‘말을 바꿔서라도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말을 바꿔서라도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 승인 2017.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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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바꿔서라도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 

                                                      

 

                                                                                                                                                                                                             이철영 <(재)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지난 10월 5일 일본 출신의 영국 작가 이시구로 가즈오(石黒一雄)가 2017년117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의 수상 소식이 알려지자 그의 대표작인 '남아 있는 나날(Remains of the Day)’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고 한다. 1989년 맨부커상(Man Booker Prize) 수상작이기도 한 이 소설은 1993년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앤서니 홉킨스와 엠마 톰슨 주연으로 영화화하여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6년 12월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동아일보에 이 영화를 언급하며 ‘책임지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는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영화에서 영국의 정치가 달링턴 경은 나치독일과의 유화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끊임없는 양보를 주도하지만 바로 그 정책 오류 때문에 몰락하는 것으로 그려졌다.

 

실존 인물인 영국의 체임벌린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유화정책은 처절한 파산을 맞았다. 그러나 체임벌린은 자신의 정책이 실패했음을 깨닫는 순간 정책적 과오를 솔직히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였다”고 지적하면서 북핵 문제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말했다.

 

“‘북한은 핵을 개발한 적도 없고, 의도도 없고, 능력도 없다’, ‘대북 지원금이 핵개발로 전용된다는 얘기는 터무니없다’고 호도했던 사람들은 지금 아무 말이 없다. 오히려 교언(巧言)으로 이런 사실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이제는 아니다’ 또는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솔직히 고백하면 될 일을 비본질적인 변명으로 무마하기에 바쁜 모습은 공인의 자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책임지지 않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우리 사회의 행태는 대한민국이 진정하게 신뢰받는 사회로 나아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해야 한다.

 

체임벌린은 정치가로서, 지도자로서 실패했다. 그러나 솔직함과 책임지는 자세 때문에 아무도 그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그와 같은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의 지적은 11년이 지난 지금 더욱 실감하게 된다.

 

‘말 바꾸기 명수(名手)’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대통령에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문제를 포함한 ‘탈원전’ 문제,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 공무원 증원 문제, 정규직 전환 문제 등에 시기를 놓치기 전에 다시 말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우선, 원자력 비전문가들이 주축인 공론화위원회와 이들이 구성한 500명의 시민참여단이 10월 20일 제출한다는 지상병담(紙上兵談)으로 우리나라 원전의 운명을 결정짓겠다는 발상부터 서둘러 말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한치 앞이 안 보이는 북핵 위기와 정부의 독선으로 신음하는 국민은 아랑곳없이 여당에서도 참으로 해괴한 일들을 벌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10월 3일 개천절에 청년 당원들이 운영하는 서울 강서구의 고깃집을 찾아 '당원가게 1호 지정식'을 열었다. 추 대표는 그 자리에서 "오늘이 개천절인데 고조선 단군 할아버님의 뜻인 홍익인간을 실천하라고,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열라고 더불어민주당이 됐다."고 말했다.

 

'당원 가게'란, 더불어민주당 정당발전위원회의 캠페인의 하나로 권리당원의 가게에 공식 스티커를 붙여주는 행사이다. 이 ‘당원가게 스티커’가 마패(馬牌)가 될지 낙인(烙印)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나, 대통령 취임 즉시 국정교과서 폐지, 독선적인 인사, ‘탈원전’ 선언과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지, 사드 배치 우왕좌왕 등의 일탈(逸脫, deviance)을 거듭하는 새 정부가 ‘블랙리스트’ 운운하며 전 정부 인사들을 줄줄이 법정에 세우더니, 여당 대표까지 나서서 소위 ‘화이트리스트’를 공공연히 만들면서 국민을 편가르기, 줄 세우기로 분열시키자는 속셈인가!

 

최근(10월3일)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 Radio Free Asia)은 중국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개성공단 내의 의류공장을 최소한 6개월 전부터 은밀히 가동해왔다고 보도했다. 통일부가 이 사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는 가운데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박 전 대통령 구속 직후부터 정부가 은밀히 개성공단에 전기를 공급해 왔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2004년 개성공업지구 출범 당시 개성공업지구 사업지원단장을 맡았던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월25일 통일미래포럼 주최 조찬 강연에서 “남북관계 복원에서 개성공업지구 재개 문제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한 사실이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북핵 관련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도 불구하고 개성공단 가동 재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한다면 이런 소문이 나도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신체의 제일 높은 위치에서 두 눈으로 좌우를 살피고, 그 다음 높이에서 두 귀로 좌우의 소리를 듣고, 마지막으로 낮은 자세로 가운데 달린 하나의 입으로 공정하게 한 번만 말하라고 사람의 얼굴을 설계했다. 그러니 한 눈으로 한쪽만 보고 한 귀로 한쪽 얘기만 듣고 쉽게 말을 쏟아내는 사람이나 충신의 간언(諫言)에 귀를 닫고 간신의 교언(巧言)에만 귀를 여는 지도자는 쉽게 말하고 쉽게 말을 바꿀 수밖에 없다.

 

반계곡경(盤溪曲徑)이란 말이 있다. 소반같이 좁은 시내와 굽은 길을 간다는 뜻으로 일을 순리대로 하지 않고 옳지 않은 방법을 써서 억지로 함을 이르는 말이다.

 

지도자가 주위에 바른 말을 할 충신조차 두지 않고 교언(巧言)에 현혹되어 자기 뜻대로만 억지를 부린다면 재앙을 부를 수밖에 없다.

 

하물며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그 꼴이라면 나라가 결국 어찌 되겠는가? 지도자가 경솔하게 쏟아낸 말들은 '말 바꾸기' 비난을 감수하고 다시 거둬들여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책임지는 지도자를 보고 싶다’는 건 우리 국민 모두의 염원(念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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