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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외설 그리고 미투 논란
예술과 외설 그리고 미투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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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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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동양화가)
이현정/칼럼니스트(정치학박사, 동양화가)

"조선 남성의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서양이나 도쿄 사람쯤 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 없는 것을 이해하고 존중합니다." 한국 최초의 여성화가 나혜석(1896-1948)의 글이다.

이 글은 1934년 당시 최고 대중지였던 '삼천리'에 게재됐다. 여성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나혜석의 선구자다운 면을 보여준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말보다 몇 배나 훨씬 힘든 고행의 길이다. 기존 남성우월주의의 뼛속까지 뿌리 깊은 DNA에 항거한 일은 오히려 사회의 지탄의 대상이나 또라이, 미친년 소리까지 들을법한 외침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의 소재거리가 되고도 남을 자유로운 용기를 발산한 신여성 나혜석. 그녀에게는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면서 또한 '최초로 일본 도쿄 여자미술대학으로 유학 간 한국여성'이란 수식어도 붙어 있다.

나혜석은 그림 그리는 일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글로서도 많은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냈고 그 시대 여성으로서의 나아갈 바를 외쳤다. 이 외에도 그 당시 거의 불가능한 유럽여행도 맛보았고 과감하게 다른 남성과 사랑에 빠져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당시 한국사회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여러 가지 돌출행동에 끝내 그녀는 철저히 버려졌다. 여성운동의 효시이기도 한 그녀의 행동은 결코 이해받을 수 없었다. 한반도의 어지러운 혼란기인 20세기 초반에 나혜석이 있었으나 21세기인 지금에 와서 겨우 나혜석이란 이름을 찾아내고 있다. 100년을 채우고 있는 지금도 가부장제의 모순은 여전하다. 그 중 한줄기가 미투로 삐져나온 것일 뿐이다.

여성의 성문제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작태가 더 파렴치하다. "예술인가 외설인가"는 아직도 모호한 질문으로 맴돌고 있다. 백과사전에서는 외설을 "사회의 물의를 일으킬만한 표피적인 자극성이 크거나 성적대상에 대한 강한 집착과 소유욕을 표출함으로써 성욕을 자극시키는 행위"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즉 이를 통해 보통사람들의 정상적 수치심이나 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 반하는 행위로 보는데, 이는 참으로 주관성이 짙다. 수치적으로나 이론적으로 딱 떨어지는 개념이 아니므로 더욱 그러한데, 그래서 예술로 위장해 장난질치기가 좋다.

표현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시키는 외설은 사실상 구분 짓기가 쉽지는 않다. 그러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본능적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면 이는 범죄행위다.

성추행도 마찬가지다. 법적인 잣대도 모호하긴 한데, 이는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끼고 불쾌감을 가졌을 때 성추행으로 보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영화, 연극 등의 예술분야에서 그것도 최고 수장격인 사람들의 성추행과 성폭행은 그 어떤 예술이라도 정당화될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술인이기 이전에 기본욕구인 성욕이 있는 인간이라는 개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말로 포장하려고 하는 순간 더 치욕스럽게 느껴진다.

필자가 고교 3학년, 미대입시준비를 하던 중에 당시 다니던 미술학원에서는 수십 명의 입시생들을 대상으로 특별한 시간을 제공했다. 그것은 데생필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크로키시간이었다.

크로키(croquis)는 움직이는 동물이나 사람의 모습을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스케치하는 것이다. 지우개로 지울 새도 없이 빠르게 그려나가면서 바른 형태를 잡아가는 것이다. 1분 안에, 혹은 3분, 5분 내외로 빠르게 사람의 전신을 그리는데, 주로 누드 크로키를 선호한다. 육체의 선은 참으로 다양하고 섬세하면서도 포즈에 따라 전혀 다른 맛을 내기 때문에 스케치능력개발에 아주 좋은 공부다.

남녀학생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니 여성누드모델이 중앙에 요염하게 서있었다. 당시 나로서는 충격적이었고 가슴이 마구 뛰었다. 그리고 헉. 저걸 어떻게 바라보고 그리나?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되면서 빠르게 주문하는 선생님의 구호에 맞춰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연필 긋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처음에 떨리던 가슴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그림 그리는 데에 혼이 빠질 정도로 몰입되었다. 완벽한 S라인이거나 패션모델 같은 군살 없는 인공적인 몸매가 아니어서 더 좋았다.

이후 누드크로키는 가장 좋아하는 스케치연습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러한 작업은 외설이라고 볼 수 없다. 누드를 바라보는 대상들이 욕정에 몸을 가눌 길이 없다거나 성욕을 펼칠 어떤 계기가 되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이 진정한 예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예술가들의 소양과 예술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관객의 인식 또한 함께 공유할 줄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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