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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 詩수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박소향 詩수다] 그래도 아무렇지 않게
  • 프리덤뉴스
  • 승인 201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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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향/시인(한국문인협회 회원)
박소향/시인(한국문인협회 회원)

황혼 무렵 잿빛 구름 뒤로 번지는 해 그림자는 얼마나 매혹적인가.

주머니 속에서도 한 움큼씩 잡히는 구름 빛의 짙은 고독. 눈물도 웃음도 이제는 세월 저 너머로 잊어야 한다는데 아픈 인연의 끝만큼 여름은 길다.

무엇인가 잃어버리고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은 여전히 인생에게 남은 숙제인가 보다.

발끝에서 묻어나는 지독한 고독의 향기가 노을보다 짙은 오늘, 인연 병은 더욱 도진다.

 

기다림

기다린다는 것은
신열 끝에 묻어오는
끓어오르는 숨 막힘을
스스로 익히는 것이다

기다림에 본질은 없다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목마른 형벌 하나 더 메고 가는 것이다

하나의 껍질을 뚫고
돌아서 나온 흔적을 보는 것이다
밤과 낮을 잊고 새벽을 잊는 것이다

손가락 끝에서
규칙적으로 나를 살리는
혈맥의 느낌을 잊는 것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잠들지 못한 영혼이
수줍게 자위하며 벌거벗고 앓다가
황홀하게 숨질 수도 있는
아름다운 병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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