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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부실 우려되는 2020년도 검정 한국사 교과서
[시론] 부실 우려되는 2020년도 검정 한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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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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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검정 역사 교과서 집필 기간 8개월은 현실적으로 무리
김병헌/국사교과서연구소장
김병헌/국사교과서연구소장

지난 731일 교육부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과 검정 실시 공고도 함께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2020년도부터 새 교과서를 사용하기로 하였기 때문에, 각 출판사는 이에 맞추어 새 교과서를 집필하여 검정 심사를 신청해야 한다. 검정 신청은 201942일부터 5일까지다.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81일부터 바로 집필을 시작하더라도 그 기간은 8개월이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정상적으로 추진되었다면 2017년 봄 학기부터 사용되었을 국정 역사 교과서는 역사 왜곡’, ‘친일 미화라는 명분을 내세운 반대 세력의 거센 저항에 부딪쳐 결국 현장에서 사용되지도 못한 채 무용지물이 되었다가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업무 지시 2호로 폐기되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폐기가 과연 정당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추진한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초·중등교육법 제29조에서 교과용 도서의 발행 체제는 대통령에게 위임한 사항이고 국정화 시행은 교육부 장관의 고시로 결정되기 때문에 합법적 절차에 따른 것이다. 이런 합법적 절차에 따라 추진된 교육 정책임에도 국정화 반대세력은 국정 역사 교과서가 역사 해석의 다양성을 헤치며,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 헌법 정신에 위배되며, ‘역사 왜곡’, ‘친일 미화라는 중대한 서술 오류를 범했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하였다.

문제의 핵심은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과서다. 역사 교과서를 다종으로 한다는 것은 곧 서로 다른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내용이 같다면 굳이 여러 종으로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사안에 대해 같은 또래의 아이들에게 서로 사른 역사를 가르친다면 이는 국민 통합이라는 교육 목적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국민 갈등과 국론 분열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가령 박정희의 5.16 군사 행동에 대해 어떤 아이는 군사 정변으로 배우고 어떤 아이는 군사 혁명으로 배운다면 이것이 과연 올바른 역사 교육이라 할 수 있겠는가?

다양한 역사 해석이란 전문가 영역이지 교과서에 실어서 아이들에게 가르칠 내용이 아니다.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도 연구자들은 자신이 접한 사료(史料)와 자신의 사관(史觀)에 따라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논문이나 학술 토론 등의 과정을 거쳐 첨차 하나의 정설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연구자들의 다양한 역사 해석 중에서 정설로 굳어진 학설을 중심으로 아이들 나이에 꼭 배워야 할 내용을 엄선하여 편집한 것이 교과서다. 교과서마다 서로 다른 역사 해석을 실어서 가르쳐서도 안 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하여 다양한 역사 인식이 가능하지도 않다.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만 하더라도 8종이나 되지만 아이들은 결국 학교에서 채택한 하나의 책으로만 공부하기 때문이다. 역사 해석의 다양성 인식은 하나의 교과서에 여러 해석을 실었을 때만 가능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의 반대 세력은 입만 열면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거론한다. 하지만 검정 교과서도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에 따라 편찬해서 검정 심사를 통과해야만 한다.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집필자의 자주성이 보장된다고 할 수 없으며, 아이들 교과서에 전문성을 보장한다면 이는 전문서적이지 교과서가 아니다. 최종적으로 검정 심사를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한다고 할 수도 없다. 검정 교과서는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고 국정 교과서는 보장될 수 없다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검정 한국사 교과서는 출판사가 여럿이라는 것 외에 국정 교과서와 차이가 없다.

마지막으로 역사 왜곡’, ‘친일 미화라는 부분도 사실상 역사 해석의 문제에 속한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에 대해 공()과 과()를 균형 있게 서술하더라도 공()을 서술하는 순간 반대 세력에게는 역사 왜곡이고 독재 미화가 되며, 일제시대 때 있었던 사건에 대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더라도 일제에 우호적인 느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반대 세력에게는 친일 미화가 되는 것이다. 이 모두가 그들이 입만 열면 말하는 역사 해석의 다양성에 속하는 것임에도 독재 미화’, ‘친일 미화’, ‘역사 왜곡이라는 틀에 가두어 국민을 선동한 것이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는 추진 과정의 적법성으로 보나 내용면으로 보나 정당한 교육 정책이었다. 오히려 반대 세력이 내세웠던 역사 해석의 다양성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헛된 구호에 지나지 않으며,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보장도 교과서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뿐이다. 무엇보다 반대 세력들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역사 왜곡’, ‘독재 미화’, ‘친일 미화는 사실 관계가 아닌 역사 해석의 문제로 그들이 늘 주장했던 역사 해석의 다양성 보장과도 배치되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이제 2020년도부터 사용할 새 교과서 집필은 시작되었다. 출판사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나 81일부터 집필을 시작했다면 8개월이고, 그렇지 못한 출판사는 8개월조차 안 되는 기간에 중학교 역사 1·2와 고등학교 한국사 및 교사용 지도서 등 다섯 권의 책을 편찬해서 검정 심사를 신청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 시절 발표한 역사 교과서 반대 대국민 성명에서 중등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는데 3~4년이 걸린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불과 8개월도 안 되는 기간에 과연 제대로 된 교과서를 편찬할 수 있을까?

새 교과서가 모습을 드러내는 2019년이면 집필진으로부터 내용에 이르기까지 모두 밝혀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국정 역사 교과서와 비교·평가되어야 하며, 덧붙여 그동안 필자가 꾸준히 제기했던 흥선 대원군과 조일수호조규를 비롯한 몇몇 중요한 부분의 역사 왜곡과 오류 부분도 함께 검증되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새 교과서를 철저히 검증하고 이를 공론화시킬 준비를 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 일선에서 사용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2020년도 사용 한국사 교과서는 명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부실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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