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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념에세이] 꽃의 영광이여
[푸념에세이] 꽃의 영광이여
  • 프리덤뉴스
  • 승인 2018.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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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노경민/수필가(한국문인협회 회원)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들 어떠리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초원의 빛을 외우던 갈래머리 중학생 시절. '워즈워드의 무지개'를 외우고 팔랑이던 교복 치마. 물 흐르듯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세월 앞에 소녀는 가고 없다.

"얘! 새싹보다 더 예쁜 것이 단풍인 걸 이제야 알겠다. 저 붉은 빛이 어쩜 저리 곱냐! 저물어가는 것도 아름답구나."

해마다 보는 단풍이건만 더욱더 애틋한 것은 다시 볼 수 있으려나 하는 마음인가. 길 가 가로수 노란 은행잎에도, 담을 타고 오르는 붉은 담쟁이에도 마음이 간다.

빗줄기에 떨어진 나뭇잎이 인도에 뒹굴고, 그 옛날 단풍잎 책갈피에 끼우던 시절이 그리워지는 지금은 같이 저물어간다.

"이젠 손자들 이름도 가물가물하고, 음식도 어떻게 만드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졌어."

그리도 크셨던 부모님은 이제 기력이 다하셔 살도 없이 바짝 마른 나뭇잎 같으시다. 작아지신 모습에 보듬어 안아도 부족할 터인데 그런 부모님께 버럭 화를 내고 짜증을 낸다. 쏟아 붓던 부모님의 사랑은 여전한데 자식은 다 자랐다고 가르치려 든다.

세월 뒤편으로 밀려나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잊어버린 것도 많다. 모르니 물어보고 또 물어보는 것이 어릴 적 '엄마, 엄마, 이거 뭐야?' 묻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 물음에 일일이 답해주셨건만, 나가는 행선지 묻고 몇 시에 오느냐고 묻는 것도 싫다.

"너도 늙는다. 그러지 마라. 항상 청춘인 줄 아냐?"

옛 앨범 꺼내놓고 본다. 빳빳하게 풀 먹인 하얀 카라를 매일 다림질하여 끼워주셨던 시간이 거기에 있다. 손수건까지 다림질하여 각을 잡아 접어주셨고 하얀 운동화는 햇살에 반짝였다. 그런 딸자식 옆에 곱게 한복차림의 엄마가 서 계신다.

"나만 자라고 엄마는 안 늙을 줄 알았는데, 울 엄마도 늙었네. 이렇게 곱던 시절도 있었네."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지만, 지금 내 곁에 계시지 않는가. 볼 수 있을 때 자주 보고, 안아 주고 사랑하는 거다. 볼멘소리는 접어두고 이제 더 나쁠 것도 없는 시간에 뽀뽀 한 번 더 할 노릇이다.

떨어진 낙엽이 거름 되어 더 붉은 꽃을 피우는데, 늙는다고 서러울 일도 귀찮을 것도 아니다. 해가 져야 달이 뜨고 별이 반짝인다.

추억은 아름답고 오늘 보내는 시월의 마지막 날도 다시 오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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