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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산책] 김장 배추
[명시 산책] 김장 배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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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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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 민

 

올 한 해도 마지막 달,
초하룻날에 흰서리는 달빛처럼 내리어
괜시리 설워운데

높고도 찬 곳에서
마음밭을 닦아온 존자들이여!

하늘 아래 가차와 뜨거운 태양볕 아래
땀 뻘뻘 흐르다가

서늘한 바람결에 매미 울음
잣아들어 벗어나

하안거를 마치고는

대추나무, 밤나무, 잣나무 잎새들
다투어 떨어지고 난 뒤

국화꽃 향기도 사그라진 터에
추안거조차 거치더니,

첫눈이 내린지 겨우 며칠 전이련데
세종대왕은 바지사장,

푸른 배춧잎 흔드는 돈 유혹의
거래 흥정 속에

존재가 뿌리 채 땅에서 뽑혀나와
도시의 거리에 끌려나와 탁발승처럼 유랑하고는

여염집 골목마다 징용돼어
크다란 김장용 고무 다라에 눕혀졌다가

청춘의 푸르른 추억일랑 머리에 인채로
허연 육신은 반으로 쪼개지고

또 쪼개지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정신은 혼절인데

소금물에 절여지고 빠알간 양념장에
버무려지고 뒤집혀지고는

마츰내는 적멸의 김치냉장고에 쟁여져
자신의 예전 모습들일랑 깡그리

잊어버리고 비인 마음조차
눈길 발자국 지우듯

뒤돌아 깨끗히 비워버리는...
참된 동안거를 말없이 받아들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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