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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영 칼럼]   (재)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칼럼]   (재)굿소사이어티 이사, 전 경희대 객원교수
  • 박세원
  • 승인 2020.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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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언서판(身言書判)’과 ‘즉선덕행(則先德行)’의 교훈
                

이철영 (전) 경희대 객원교수
이철영 (전) 경희대 객원교수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말은 중국 「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서 유래한 말로 당(唐)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면서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삼았던 신체, 말씨, 문필, 판단력의 네 가지를 이르는 말이다. 원문은 ‘凡擇人之法有四: 一曰身, 言體貌豊偉; 二曰言, 言言辭辯正; 三曰書, 言楷法遵美; 四曰判, 言文理優長’이다. ‘무릇 사람을 고르는 법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신체(身)가 늠름해야 하며, 둘째는 말(言)이 분명하고 반듯해야 하며, 셋째는 글씨(書)가 해서처럼 정확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넷째는 사리분별(判)이 뛰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위의 구절 다음에 ‘四事皆可取, 則先德行; 德均以才 才均以勞, 得者留 不得者放’이라는 구절이 이어진다. 즉, “네 가지(신언서판)가 다 갖춰졌으면 잠정 합격시켜서 우선적으로 덕(德)을 살피고, 이어 덕과 재능이 균형을 이루는지를 살피고, 끝으로 재능과 실행력이 균형을 이루는지를 살핀다. 이 세 가지를 갖춘 자는 남겨두고 갖추지 못한 자는 내보낸다.”라는 의미이다. 즉, 신언서판에 이어 덕, 재능, 실행력의 세가지를 살피되 그중 우선이 덕이란 뜻이다. ‘신언서판’이 요즘 말의 ‘스펙’이라면 덕(德)은 ‘인품(人品)’에 해당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회인사청문회제도는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 국회의 검증을 통해 대통령의 인사권을 견제한다는 취지로 2000년에 도입된 제도이다. 국무위원의 경우는 국회청문 결과와는 상관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어서 후보의 자질(덕, 재능, 실행력) 검증은 고사하고 대통령의 임명을 정당화시키는 통과의례로 전락했다. 후보는 청문위원들의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의혹만 드러낸채 공직에 임명되고 국민들은 인사청문회에 대한 불신과 임명권자에 대한 분노만 쌓이게 된다.

 

요즘 정가(政街) 흥행 1순위는 단연 추미애 법무부장관이다. 야당과 많은 국민들의 반대에 아랑곳없이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추 장관의 유아독존 전횡(專橫)과 안하무인 막말이 흥미진진하다. 우선, 추 장관의 법무부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검찰총장을 무력화하고 법무부장관의 권한 강화에 초점을 맞춰 내놓은 '검찰개혁 권고안'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무부가 검찰을 직접 지휘한다면 결국 검찰이 정권의 주구로 전락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의 보장이다.

 

추 장관은 검찰 인사 문제가 비판을 받자 “검찰총장이 인사에 대해 내 명령을 거역(拒逆)했다”고 했고, 지난 7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는 등의 감정적 발언들을 쏟아냈다. 또한 국회 법제사법위 회의에서는 야당의원이 법무차관에게 “올해 서울동부지검장에서 법무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추 장관 아들 수사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을 하자 “소설을 쓰시네”라고 비아냥댔다.

 

끝없는 의혹과 논란을 묵살하고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했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지난 해 10월 취임 35일만에 사퇴하면서 “저는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합니다. ‘불쏘시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라며 검찰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이런 조국 전 장관의 내로남불이나 추 장관의 유아독존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환호하는 국민들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추 장관은 거대여당이 이끄는 브레이크 없는 고속열차에 편승해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질주하고 있다. 오르막에선 쉴 수가 없고 내리막에선 멈출 수가 없는 브레이크 없는 열차의 질주는 참사(慘死)의 전주(前奏)이다.

 

추 장관은 지난 7월 30일 권력기관개혁 당정청 협의회에서 “검찰, 경찰 간의 역할을 새로이 정립하고 국민의 인권이 충실히 보호되는 새로운 형사사법체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검경간의 새로운 역할 정립이라는 이번 권력기관개혁이 검찰 힘 빼기에만 초점을 맞춘 졸속 결정이 아니길 바란다. 국민들은 일사천리로 입법절차가 완료된 공수처와 대공수사권까지 넘겨받는 거대 세포조직인 경찰이 ‘민주주의의 허울을 쓴 독재’의 쌍두마차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며칠 전 열린 신임검사 임관식에서 추 장관은 “검찰은 국민의 인권을 옹호하기 위해 탄생한 기관이고, 검사는 인권 옹호의 최후의 보루”라면서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이라는 말이 있듯,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게, 그러나 상대방에게는 봄바람처럼 따스한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같은 뜻인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액자를 청와대 비서관실에 선물했다.

 

그러나 '조국 사태', ‘드루킹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불법개입 의혹 등을 거치면서 현 정권 사람들은 ‘자기편에는 봄바람 같고 상대편에는 가을 서리 같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덕(德)은 ‘도덕적, 윤리적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인격적 능력’이라고 정의되며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으로 나타난다.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이 ‘즉선덕행(則先德行)’의 교훈을 안다면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읊조릴 이유도 없을 것이다.

 

“’추미애 사단’ 檢지휘부 완전장악”이란 헤드라인과 함께 추 장관의 미소띈 사진이 오늘(8월7일) 석간 1면을 장식했다. 일주일 전 추 장관이 “검경간의 새로운 역할 정립”을 말했을 때 검찰은 “손발 잡더니 아예 묶어버렸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렇다면 이번 검사장급 26명에 대한 인사는 추 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찍어내기’ 인사의 완결편인 셈인가? 거대여당의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대해 의석수 103석에 불과한 야당이 어떤 제동을 걸 수 있을까마는, 지역구선거에서 41.5%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제1야당이 수수방관 속수무책으로 장외나 기웃거려야 할지 의문이다.

 

자고로 덕이 없는 인재(人才)들이 인재(人災)를 불러일으켜 나라를 시끄럽게 만든다. 사회정의와 법치를 무시하며 국민을 우롱하는 고위공직자들의 혹세무민(惑世誣民)과 견강부회(牽强附會)를 지켜보면서 덕(德)을 필수요건으로 인재를 등용했던 중국 당태종의 혜안이 새삼 경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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