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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제 시론] 역사전쟁, 과연 전쟁인가? 3
[정광제 시론] 역사전쟁, 과연 전쟁인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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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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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논쟁이 아닌 대한민국 쟁탈전

5․18 광주사태를 계기로 소위 반제국주의, 민중․민족주의 사관이 학계를 신속하게 장악

한국의 정치적 갈등의 배후에 역사인식의 근본적 차이가 있다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 국민국가가 성립했다고 할 수 없다는 역사인식을 체계화한 것이 한길사에서 6권으로 출간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역사전쟁, 과연 전쟁인가? 3

 

이승만학당 이사 정광제 

최근에 전개되고 있는 역사 논쟁은 단순한 학술적 논쟁의 수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 최근의 역사논쟁은은 그야말로 국가의 정통성을 어떻게 결정하고 또 장악하느냐 하는 일종의 사상내전이다.

더이상 이를 방치했다가는 심각한 준(準)내전적인 큰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고도 생각한다.

[백년전쟁] 동영상에서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인격 파탄자, 민족배반자, 일신의 권력을 추구한 모리배로 매도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도 뱀과 같이 아주 교활한 인물이라며 공산당 선전부에서 작성했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정도의 인신공격을 가하고 있다.

더구나 그것이 역사교사들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선전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젊은 의원이 백선엽 장군을 민족의 반역자라 비난하고, 나아가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공당의 대변인이 박정희 대통령을 귀태(鬼胎)라고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전부 맥락을 같이 한다.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적 갈등의 배후에 역사인식의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민적인 관심을 환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막상 정치권은 안이하기만 하다.

지금은 역사논쟁이 아닌 대한민국 쟁탈전이라고 이미 말한 바 있다.

'역사전쟁’이라는 표현은 좌익 진영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1947년 12월 전까지는 결코 대치했던 세력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이승만과 김구 등을 [백년전쟁] 동영상에서 백 년 전부터 민족주의와 친일세력으로 나뉘어 서로 전쟁을 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허나 전쟁이라는 말을 쓴 것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미 2011년에 "역사정의실천연대" 라는 기구를 발족시키시면서 ‘역사전쟁’이라는 용어를 썼다.

그리고 2008년부터 ‘역사전쟁 일지’라는 것을 작성해서 공공연하게 인터넷에 올려놓고 있다.

물론 그 뿌리는 더 깊다.

해방 이후 좌우대립에 이미 그 뿌리가 있었고, 거기에는 마르크스주의사관의 문제, 그리고 남북한의 체제대결 문제, 또 하나는 순수한 민주화 투쟁인 반독재민주화 투쟁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각각 상당히 다른 세 가지 요소가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주장으로 나타나는 양상도 복잡하다.

따라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응하지 않으면 많은 오해가 빚어질 수 있는 심각한 상황이다.

최근의 역사논쟁이 대한민국 쟁탈전을 목표로 하는 역사전쟁 또는 사상적인 내전의 양상을 띤 심각한 현상이라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제 좌익 역사인식의 배경에 대해 논해 보자.

1969년에 이기백, 이우성, 한우근, 김용섭 등 역사학계를 대표하는 네 분이 역사교육의 개선방안으로 합의한 민족의 주체성, 민중의 역할, 내재적 발전론 등의 내용은 그 당시에는 이것이 어떠한 정치적 의미를 갖고 장래 어떠한 정치적 갈등을 유발할 것인가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1968년 12월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는 내용의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었듯이 박정희 대통령도 강력한 민족주의자였다.

이러한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1972년도 유신시기에 국정교과서 제도가 시행되면서 본격적으로 민족주의 교육이 이루어졌다.

당시까지도 민족주의의 역할은 ‘조국근대화’의 동기로서 나름대로 실용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 상황이 달라졌다.

5․18 광주사태를 계기로 소위 반제국주의, 민중․민족주의 사관이 학계를 신속하게 장악해 들어왔다.

그렇게 해서 80년대 후반이 되면 강만길 교수가 주도하는 소위 ‘분단체제의 역사학’이 성립하게 된다.

그 주요 내용은 “역사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기본단위는 민족이다.

한국 근현대사의 지상과제는 민족의 독립과 통일이다.

대한민국은 반민족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족의 분단을 무릅쓰면서 세운 국가다.

통일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진정한 의미의 근대 국민국가가 성립했다고 할 수 없다”는 것 등이다.

이러한 역사인식을 체계화한 것이 한길사에서 6권으로 출간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이다.

그 책은 처음에는 자유민주적 기풍을 가진 학자들도 참여했는데, 마지막 6권에 이르면 남로당 계열을 잇는 사람들의 논문도 끼어들어 북한의 주체사상과 그 지도적인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책을 읽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집권한 것이 바로 노무현정부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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