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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明時待 마중물] 장날
[光明時待 마중물] 장날
  • 프리덤뉴스
  • 승인 202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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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날

 

증손지딸아, 있나?”

 

큰집 할매는 항상 배시시 웃고 계셨다.

그녀의 얼굴은 개그맨 옥떨메와 영화배우 윤문식을 섞어놓은 듯한 묘한 얼굴이었다.

코가 납작 주저앉았고 눈은 새우젓눈이고 야매 틀니를 한 입은 항상 조금 벌어진 채 웃고 계셨다.

말씀을 하실 때는 틀니가 함께 덜걱거리며 장단을 맞추고 말씀 자체가 리듬을 타는 듯 마치 요즘 젊은 가수들 랩을 하는 것처럼 들렸다.

알아듣기 위해서는 정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을 해야만 했다.

 

할머니 오셨어요?”

반겨 맞는 내게 그녀는 어딜 가자 하셨다. 이른 아침에 어딜 가느냐고 물었더니

야달시 차 타고 핑동 장터에 갈라꼬 그란다. 같이 가꾸마.” 하신다.

일곱 시 반쯤 된 시각이었다. 할매는 내게 재게 옷 입고 울집으로 온나.” 하시더니 또 배시시 웃으시곤 가셨다.

아이에게 밥 차려놨으니 먹고 학교 가라고 말하고 가진 옷가지 중에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옷으로 골라 입고 한껏 이뻐지려고 노력하며 20여 분을 분주하게 돌아치다 큰집으로 갔다.

 

왔나?” 하시던 할매가 새우젓 눈을 한껏 크게 뜨시며 놀란 시늉을 하신다.

장터에 가는데 무슨 선보러 가는 색시 모냥을 내고 왔냐고 혀를 끌끌 차시더니

우야든동 가자. 빠쓰 올 시간 됐다.” 하시며 내게 대문간에 있던 커다란 보따리를 가리키며 갖고 따라오라신다.

?

뭐야, 지금 놀러 가는 거 아니었어?

뜨악한 얼굴로 보따리를 집어드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왔다.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다리목 길에 동네 할매들이 모조리 독립만세 부르러 아우내장터에 가는 듯한 비장한 모습으로 보따리도 들고, 광주리도 이고, 새끼줄로 발을 엮은 닭도 몇 마리 보자기에 싸서 들고, 태어난지 얼마 안 된 강아지 두어 마리를 상자에 담아 들고 줄지어 바쁜 걸음으로 나가시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마치 경쟁 따위는 애초에 하기 싫다는 듯 각자 가지고 나가는 물건이 달랐다.

큰집 할매는 묵나물과 초봄이라 이쁘게 싹이 올라온 애쑥 캔 것과 밭에서 캐어 다듬은 달롱이(달래)를 싸가는 길이었다.

할매는 다리가 불편하신지가 오래되었다는데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던 지팡이를 대문 뒤에서 꺼내 짚으셨다.

그러니 매물을 운반할 사람이 필요했던 게다.

에구...... .

그런 줄도 모르고 한껏 멋을 내고 따라나섰으니 내 꼴이 우습게 되었다.

 

“oo이 엄마야, 니도 가나? 잘 왔다.”

머할라꼬 그래 채리입고 왔노?”

하이고마, 야가 장날이라고 지름칠하고 뽐내고 왔드래요~”

할매들이 한 말씀씩 웃는 소리를 보태시며 나를 반기셨다.

멀리 대가리에서 흙먼지를 쑤와- 일으키며 버스가 달려오자 습관처럼 줄을 서셨다.

먼저 타서 한 자리라도 남았으면 앉으려고 줄 서는데 얼마나 잽싸던지!

큰집 할매와 나는 꼴찌가 됐다.

이미 대가리 이전부터 장터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탄 터라 빈자리는 없었다.

 

장날 시골의 버스 안 풍경.

힘 있는 할매는 짐보따리 던지고 올라타고, 힘이 없는 할매는 나와 같은 젊은 사람이나 때로는 기사님이 짐을 올려주고 손도 잡아줘야 했다.

승차한 할매들은 버스를 초속으로 스캔한 후 적당한 바닥에 자리 잡고, 좌석 차지는 못할 줄 예상하고 준비한 듯 박스 찢은 것 등을 깔고 앉으셨다.

장터 구경 간답시고 차려입은 옷매무새가 무색했지만 나도 큰집 할매가 깔고 앉은 철 지난 달력 한쪽에 엉덩짝을 살포시 얹고 버스 바닥에 앉았다.

암묵적 규칙이 시골 버스에는 있었다.

닭들은 꾸꾸꾸, 강아지들은 끼잉끼잉, 아짐들과 할매들은 하하호호 떠들고 소란스러웠는데, 할배들과 아재들은 수인사 정도만 하고 하차할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시골의 土路는 아침의 신선한 공기 속을 흙먼지 뿌옇게 어지르며 달리는 버스로 인해 생동감이 넘쳤다.

덕분에 나도 여러 어르신께 이런저런 인사도 하고 처음 보는 어른에게는 첫인사도 드리면서 함박웃음 속에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달려 평동 장터에 도달했다.

 

전봇대 기둥 옆으로 큰집 할매가 항상 좌판을 벌이는 자리가 있었다.

참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방앗간이 들어선 건물을 위시하여 중국집, 해장국집 등이 주욱 있는데 널찍한 도로 쪽으로는 전부 좌판이었다.

시골의 꾀죄죄한 노인네들은 대부분 흰색 옷이었지만 나름 깔끔하게 차려입고 앉아 산나물이며 야채며 병아리며 토끼며 닭이며 오리며 강아지며 칡이며 된장이며 청국장 등을 보따리 보따리 주욱 늘어놓고 호객을 하고 있었다.

할매 곁에 나도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멀뚱거리고 구경에 한창인데 할매가 갑자기 등짝을 때렸다.

아야, 니 그래 가마이 앉았으마 우찌 파나? 여 묵나물 사소, 애쑥 사소, 달롱이도 있드래요~ 이라고 외치야 안 하나? 쩌 보래이. 다들 소리 안 지르나?”

...

나는 운반꾼이 아닌 호객꾼으로 변신해야 했다.

뭐 그까짓 거 일도 아니지?

나도 어지간히 낯짝이 두꺼운지라.

 

할매, 아짐들 소리가 묻히게 소락빼기를 질러댔다.

아줌마, 여기 묵나물이랑 애쑥이랑 달래 있어요.” 하다가

이보시래요. 여 묵나물 있드래요. 애쑥이 싱싱해요. 달롱이 쫌 보고 가소.” 하며 할매 말투를 흉내내다가

싸요, . 후딱 오믄 깎아줄랑게 얼렁 오쇼!” 하고 전라도 사투리로 외치다가

떨이요, 떨이. ~ 싸다, !” 하면서 기차 화통 삼킨 양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더니

갖고 간 재활용 검은 비닐봉투만 몇 장 남기고 순식간에 다 팔려버렸다.

할매가 너무 좋아서 틀니를 덜걱거리면서 손뼉을 치며 하하하 웃으시더니

니 재간이 참말 좋네? 담 장날에 또 오자.” 하시면서 내 덕에 빨리 팔았으니 맛난 것 사주시겠다고 장터 구경이나 가잔다.

 

여기저기 구경하는데 한 가게에서 남자가 뭔가 펄펄 끓고 있는 커다란 검은 무쇠솥을 사람 키만한 나무주걱으로 젓고 있었다.

저게 뭐예요?”

올창묵

 

? 저게 올챙이로 만든 묵이예요?”

아이, 올창묵이라고, 국시다.”

올챙이가 아이라 옥시기죽으로 만드는 기다.”

할머니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하하하 웃으셨다.

남자는 끓은 옥수수죽을 연신 커다란 뜰바가지로 퍼서 옆에 퍼질러 앉은 여자 앞의 대나무받침 위에 걸친 구멍이 숭숭 뚫린 커다란 양은 함지박에 붓고 여자는 국자로 죽을 휘저으며 함지박을 리미드컬하게 흔들어댔다. 밑에는 찬물이 가득 담긴 고무대야가 있었고 올챙이가 꼬물꼬물 모여 있는 듯 국수가 가득 차고 있었다.

바가지 구멍 사이로 비질비질 삐져나오는 옥수수죽이 찬물에 떨어지면서 올챙이 모양으로 익어가는 재미있는 국수였다.

희한하게 묵이 아닌데 만드는 방법 때문에 묵이라고 했다.

올챙이국시라고도 한다. 니 먹고잡나?”

할매는 난장 가운데 작은 식탁 하나를 차지하고 앉아 국수 한 사발을 주문했는데 식당 여주인은 기다릴 겨를도 없이 커다랗고 누런 양은그릇에 엄청난 양의 올창묵을 담아 툭 던지듯 내려놓고 갔다. 할매는 식탁 위 종지에서 양념간장을 푹 퍼서 넣고 휘저으셨다.

잔치국수 비슷한 국물과 갖은양념을 넣은 간장으로 간을 맞춘 올챙이국수를 난생 처음 맛봤다.

숟가락으로 퍼먹어야 했는데 씹을 겨를도 없이 입안에서 미끄러지며 목구멍으로 쏘옥 들어가는 것이 진짜 올챙이 목넘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맛있었다.

할매와 둘이서 한 그릇을 게눈감추듯 먹어치웠다.

올창묵 한 그릇은 맛보기 간식이어서 둘이 먹기엔 식사대용으로는 부족했다.

 

할매는 내 손을 잡아끌고 지팡이 짚은 발을 절룩절룩하시며 큰 건물로 들어가신다.

순대국밥집이었다.

아야, 니 순대는 물줄 아나?”

없어서 못 먹는다 했더니 순대랑 선지국밥을 시키신다.

선지는 먹어본 적 없어요.” 하면서 한 숟갈 떠먹은 후 말을 잊고 마구 퍼먹었다.

선지국밥에 대해서는 솔직히 라는 선입견과 기독교적 편견 때문에 부러 피하고 먹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날 먹은 선지국밥은 누린 잡내도 하나도 안 났고 마치 내 피요, 살이요, 영혼이 돼줄 것만 같이 맛있었다.

솔직히 이사할 곳이 충청도 단양이라 하여 음식 맛은 어떨지 좀 의심했었다.

그러나 그 날 평동의 음식들은 내 의심을 불식시켜버렸다. 뭐 아침을 거른 탓도 있을 것이고.

 

배가 뽈록 나오도록 순대까지 다 해치우고 난 후 할매는 뭐 갖고 싶은 거 있냐고 물으셨다.

나물 판 돈을 죄다 써버리는 것 같아 됐다고 사양하니까 할매가 말씀하신다.

, 내가 돈 자꾸 쓴다고 그라나? 하하하하하~ 돈은 묵고 쓸라고 버는 기다. 아나?”

그랬다. 할매들은 이미 자식들이 다 커서 대처에서 나름대로 잘 살고, 농사지어 쏠쏠한 돈도 벌고, 살 날이 산 날보다 비교가 안 되게 짧으니, 소일거리로 장터에서 푼돈 벌어 당일 다 써버리는 것이 낙인 사람들이었다.

자기 손으로 해먹기 번거롭고 어쩌다 먹을 수 있는 음식이나 간식도 먹어보고, 가끔 할배들 등긁개나 할매 하얀 쪽찐 머리 빗어줄 참빗도 사기도 하면서. 결국 그 날 할매는 몸베와 나물 말릴 때 쓸 대광주리와 대채반을 내게 사주셨다.

도담마트에서 밀가루와 간장, 사카린(뉴슈가), 식용유 등을 갈 때보다 더 무겁게 사 들고 우리는 배부르고 행복해진 웃음과 함께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돌아오는 버스는 더욱 시끄러웠다. 돈 벌고 맛난 것 먹고 필요한 것을 샀으니 행복한 웃음만발이었다.

비록 갈 때 함께 갔던 닭과 병아리, 오리, 토끼, 강아지 등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행복한 그 웃음들에 묻혔다.

정류장마다 다음 장날 다시 만나자 인사하며 헤어지는 사람들 중에는 언젠가는 다음 장날에는 만날 수 없는 연로하신 분들이 많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분들 중 몇 분은 내가 거싯들(거사평)에 살고 있던 동안에 작고하셨다.

장마지기 전까지 장날이면 큰집 할매와 동행했고 평동의 장터는 내 인생에 또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곱게 채색했다.

 

여름 어느 날부터인가 할매는 장터에 나가지 않으셨다.

날도 덥고 다리도 너무 불편하고 늙으니 일도 하기 싫다고 하셨다.

그 대신 장날 혼자 나가는 내게 생활용품을 사다 달라고 부탁하셨다.

참기름, 들기름을 어느 방앗간 가면 짜줄 것이니 받아오라고 시키기도 하셨고, 떡 좀 빼오라고 하기도 하셨고, 슈퍼에 가서 이것저것 사오라고 하기도 하셨다.

매번 시키실 때마다 빠지지 않는 품목은 사탕이었다.

큰집 할매는 알사탕, 콩사탕을 좋아하셨다.

그렇게 나는 큰집 할매에게 진짜 증손녀 노릇을 했다.

그만큼 정도 깊어지며.

 

光明時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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