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제 時論] 역사전쟁, 과연 전쟁인가 19
[정광제 時論] 역사전쟁, 과연 전쟁인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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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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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야당이 개헌을 주장하는 내각책임제는 한국 정치를 귀족과두적인 붕당정치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

박정희, 대통령 중심제와 직선제를 복원하고 부통령제를 폐지에도 야당 반대없어

건국과 함께 즉각적으로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했던 것으로 간주하는 환상

박정희는 처음부터 독재자였던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근본주의적 대립을 돌파해 가면서 독재자로 변신

10월 유신 박정희의 내면에서는 거의 불가피했던 공적인 선택 

거기에는 박정희의 개발정책에 사사건건 대립해 온 야당 정치지도자들의 책임도 있다

역사전쟁, 과연 전쟁인가 19

정광제(이승만학당 이사)

 

56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야당이 개헌을 주장하는 내각책임제는 한국 정치를 귀족과두적인 붕당정치로 몰고 갈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4·19 이후 민주당정부 하에서 벌어진 붕당정치를 보면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후 박정희 소장이 쿠데타를 통해 집권을 한 다음 1963년에 개헌을 한다. 

대통령 중심제와 직선제를 복원하고 부통령제를 폐지하였다. 

그런데 당시 야당은 그에 반대하지 않았다. 

야당은 쿠데타로 정권을 빼앗기고 그들의 오랜 정강정책인 내각책임제를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대통령중심제로 정부형태를 확정한 것은 건국 후 15년만인 1963년의 일이었다. 

이런 식으로 정부형태를 포함하여 민주정치의 제도 하나하나를 모색하고 결정하는 과정이 건국 후 40년의 역사였다. 

이 기간에는 시민적 중산층도 존재하지 않았고, 실타래처럼 얽인 ‘나라만들기’의 과제는 권위주의정치가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건국 초부터 민주제 정치가 완전하게 작동하지 않은 것은 다 그만한 역사적 사정과 제약조건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새삼 주목할 점은 그 과정에서 4년마다 한 번씩 총선과 대선을 어김없이 치렀다는 사실, 다시 말해 자유·보통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민주정치는 제도적으로 부정된 적이 없다는 사실 등이다. 

그런 시각에서 건국 이후 한국의 민주제 정치의 역사를 적극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교사적 관점에서의 역사

건국과 함께 즉각적으로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공동체의 형성이 가능했던 것으로 간주하는 환상의 경우도 있다. 

사실 비교사적으로 보면 불과 60여 년 사이에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룬 경우는 정말 찾기 힘들다. 

선진국들도 오늘 같은 체제를 만드는 데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는가. 

사실 우리는 건국과 전쟁의 파천황(破天荒)의 혼란을 뒤로하고 보기 드물게 선진기술과 자본의 도입으로 후발국의 이점을 잘 살리는 반면 주로 정치적 혼란과 쇠퇴로 대표되는 후발국의 불리한 점을 극복할 수 있어서 상대적으로 정말 적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이제는 비교사적 이해가 필요한 싯점이다.

 

일본의 기무라 칸(木村幹)이라는 정치학자가 쓴 책을 보면 2차 대전 이후 약 120개 후진국이 독립을 했는데, 그 가운데서 정권교체의 가능성을 제도적으로 전제한 보통·자유선거를 실시한 나라는 7개국에 불과하다. 

그것도 잠시 시행하다가 그만 둔 경우가 많고 지속적으로 선거제도를 유지한 나라로서 한국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또한 비교사적으로 보면 1950-60년대 초에 걸쳐 전 아시아․아프리카 지역에 군사쿠데타의 물결이 일었다. 

5․16군사쿠데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이유는 2차 대전 이후 독립된 개도국 국민들의 기대 수준은 높아가는 반면 민간정치인들의 정치력이 이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개도국의 어느 나라든 가장 잘 조직된 조직이 군부였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게도 파도처럼 제3세계를 휩쓴 군부쿠데타 중 거의 유일하게 경제성장을 한 나라는 우리나라 뿐이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5․16의 정치적 의미와 경제발전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게 서술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오늘은 박정희라는 인물의 리더십과 관련해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다. 

박정희는 국가권력기구를 권력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남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름대로의 사명감으로 폭력에 의해 뒷받침된 강력한 국가권력을 창조적 용도로 사용한 데에서 보기 드문 역량을 보여주었다. 

이런 면에서도 균형적 시각이 필요하다. 

다시말해서 박정희 대통령의 권위주의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함에도 그 시대의 한국정치가 타협과 조정을 모르는 근본주의적 대립을 안고 있었다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씀이다. 

 

예컨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를 할 때 야당과 비판세력의 저항은 매우 격렬하였다. 

당연히 해야 할 일에 대한 저항이 그렇게 컸던 것이다. 

박정희는 결국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비판세력을 진압했다. 

박정희는 처음부터 독재자였던 것이 아니라 이렇게 근본주의적 대립을 돌파해 가면서 독재자로 변신해 갔던 것이다.

개발정책의 노선을 둘러싸고서도 마찬가지 대립이 있었다. 

박정희의 대외개방적 수출주도형 개발정책에 맞서 야당은 농업과 중소기업을 우선하는 대중경제론 (DJ의 경제정책)을 들고 나왔다. 

이렇게 개발정책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방향의 대립이 가속화되면 평화로운 정권교체는 불가능해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박정희는 마땅히 1971년의 대선 이후 물러날 채비를 했어야만 했다. 

그러나 정권이 대중경제론을 주장하는 야당으로 넘어가서는 지난 8년간 이룩한 모든 것이 허물어진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1972년 박정희가 감행한 10월 유신도 박정희의 내면에서는 거의 불가피했던 공적인 선택이었고, 거기에는 박정희의 개발정책에 사사건건 대립해 온 야당 정치지도자들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한 시대의 정치를 민주냐 독재냐의 이분법으로 볼 수는 없다. 

모두가 한 시대를 같이 살면서 현명함과 어리석음으로, 공리와 사욕으로 뒤얽혀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독재자이고 김영삼과 김대중은 민주화투사라는 이분법만큼 허소한 형식주의적 역사인식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든지 역사는 단계를 거쳐서 발전하는데, 그 단계가 압축될 수는 있지만 완전히 건너뛸 수는 없다. 

건너뛰게 되면 도로 주저앉게 되어있다.

필자는 대한민국 건국이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의 성격을 합친 진정한 혁명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혁명이라고 하면 대개 대중이 봉기해서 이룩하는 것을 상상하는데 그것은 겉모습이고, 혁명의 진짜 의미는 주체세력이 교체되고 국가이념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 일이 바로 1948년에 일어났다. 

건국은 1945-48 사이에 일어난 과정이라고 보는데, 그 사이에 일본이 지배하던 나라가 미 군정체제 아래 놓였다가 마침내 우리 국민 스스로 지배하는 나라가 됐다. 

물론 반쪽만의 독립이긴 했지만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나 그 이전까지의 정치체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이념으로 하는 민주공화국의 법적 기틀이 마련되었다.

그것은 우리의 힘만으로 밑으로부터 봉기해서 이룬 것이 아니다. 

우리가 타도해야 할 대상이었던 일제를 연합군이 전쟁을 통해 소멸시키고, 또 정신적으로 해외와 국내의 독립운동을 통해 길러온 혁명의지가 결집되어 결실을 본 결과 대한민국이 탄생되었다. 

그래서 미국의 독립혁명처럼 외세의 지배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고, 제헌헌법을 통해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e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1789)’과 맞먹는 법적 토대를 만든 것이다. 

그때 만들어진 헌법적 토대가 기본적으로는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혁명의 성과가 국가적인 틀로 제도화되어 실제 민주공화국으로 굳건히 자리 잡을 때까지는 약 80년이 걸렸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열악한 상태에서도 프랑스에 비해 굉장히 빠른 시일 내에 제도적 민주화를 달성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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