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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우남 건국대통령 56주기 추도식
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우남 건국대통령 56주기 추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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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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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처음으로 개최된 우남 건국대통령 56주기 추도식

 

雩南 이승만 건국대통령 56주기 추도사

2021719

오늘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부 우남 이승만 건국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역사적 인물, 지도자를 평가하는 것은 그가 남긴 위업, 유산을 통해서 평가됩니다.

오늘 세계는 현대문명의 특이점을 지나며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혼돈 그 자체입니다.

대한민국은 해방 후에 겪었던 극심한 혼돈과 갈등 이상의 시절로 돌아간 느낌입니다.

때문에 그 혼돈 속에서 건국혁명을 성취하신 우남의 정신과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것은 정말 뜻깊은 귀중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남은 청년기에 이미 조선을 진정한 문명국가로 만들려는 애국 계몽-혁명활동에 투신했습니다.

우남은 이를 실현하는 길은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깨닫게 됩니다.

우남은 24세때 옥중에서 독립정신을 썼습니다.

식민지 조선이 100년 후, 200년 후에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가를 쓴 것입니다. '

한국 현대화운동의 성서'로 평가된 독립정신, 이후 1960년대까지 한국인의 사상을 지배한 책으로 평가받습니다.

우남은 자유민주 공화제를 향해 매진한 진정한 혁명가입니다.

우남은 식민지 조국을 떠나 33년간의 망명 독립투쟁을 통해 단련됩니다.

우남은 그 비전과 인품이 널리 인정되어 이미 45세에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우남은 조선이 가장 암울하던 시절에 미국에서 미국의 소리 방송(VOA)을 통해 고국의 동포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했습니다.

국가든 개인이든 동지와 적을 혼돈하면 패망에 이릅니다.

우남의 탁월한 통찰력은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19233월 태평양잡지에 발표한 공산당의 당부당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볼세비키 혁명을 통해 소비에트 정권이 등장한 불과 5년 후에 세계에서 최초로 공산주의에 대한 뛰어난 성찰과 경고를 발한 것입니다.

우남은 제국주의 일본이 미국을 공격할 것을 Japan Insaide Out이라는 명저를 통해 경고했습니다.

우남은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동포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 51)

우남이 건국혁명이라는 위업, 기적을 이룬 것은 하나님을 믿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남은 한반도에서 봉건체제를 일소하는 결정적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조선 왕실의 자산을 국유화하고 농지개혁을 하고, 여성에게도 교육 기회를 비롯,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부여했습니다.

세계최고의 문명국가 미국 수준의 공화제를 지향했습니다.

우남의 이러한 신조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건강한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6.25전쟁은 우남의 전쟁입니다.

우남은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연합군을 물리쳤습니다.

이 거대한 침략을 이겨낸 것은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우남을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맥아더 장군뿐아니라 수많은 미군 장교들이 우남의 인품과 경륜을 존경했습니다.

우남이 지도한 건국혁명전쟁을 통해, 한반도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애국심 넘치고 자유를 지키는 국군이 건설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진정한 국민국가가 되었습니다.

 

한반도의 남과 북의 차이는 우남이 문명사회를 향한 길을 제시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를 토대로 한국인들의 잠자고 있던 유전자를 깨워서 이룬 성과에 의한 것입니다.

한국은 우남 12년간과 박정희 대통령 18년간의 변신과 도약의 시대가 있었기에 문명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북쪽이 불량국가, 실패국가가 된 것은, 북한의 김일성사교전체주의 체제가, 우남과 박정희를 부정하고 이를 말살하려 하면서, 반대로 갔기 때문입니다.

악한 선택의 결과가 악의 결과를 낳은 것일 뿐입니다.

유엔 무역개발회의(UNCTAD)72일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습니다.

유엔이 창설된 후 처음으로 신생독립국으로 인정했었던 대한민국을, 바로 그 유엔의 기구가 역사상 처음으로, 비서구문명의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를 선진국으로 인정함으로써, 우남을 인정한 것입니다.

우남은 오늘의 한국이 문명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근본을 만들고 이끄신 한민족의 모세입니다.

 

우남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자유의 적들이 만든 것입니다.

공산전체주의자들에게 우남은 악몽 그 자체였습니다.

소비에트 정권의 본질을 세계최초로 공격한 공산당의 당부당때부터, 스탈린과 남로당의 도전을 물리치고 자유민주공화국을 건국했을 때, 그리고 휴전협정 조인 직전의 반공포로 석방 때 저들의 惡夢은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미동맹으로 대한민국을 지켜낸데 대한 원한에서,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 공산주의자 들에게 우남은 제1의 공적이었기 때문입니다.

85세가 된 우남이 스스로 下野을 결심하게 만들었던 3.15 부정선거는 우남의 통한의 오점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국가엘리트 양성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한국은 지금 3.15부정선거와 비교도 되지 않는 4.15부정선거를 겪고도 이를 외면하고 있는, 언론과 지식인들이 죽은 사회입니다.

우남은 임종전에, 병상에서 날마다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늙고 지쳤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민족을 위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민족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게 하소서.”

한국인들은,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던 우남의 유언을 잊고 있습니다.

지금 공산전체주의와의 싸움인 문명의 세계대전을 통한 한반도의 분단극복, 통일을 앞두고 우남과 같은 정신을 가진, 헌신하는 지도자가 한국에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건국대통령이신 우남 이승만 박사의 명예를 회복하고 현창해 나가는 일은 우남의 은덕에 번영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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