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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타련,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청구권자금 보상내역 공개촉구 집회 개최
한타련,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청구권자금 보상내역 공개촉구 집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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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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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갈등파타연대(한타련)은 2021. 11. 13. 부산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인근 노상에서 청구권자금보상내역과 보상금수령자 사진자료를 공개할 것을 촉구하는 집회를 개최하였다.

이하는 이날 발표한 한타련의 성명서 전문이다.

 

[성명서]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청구권자금 보상내역 공개하고, 보상금 수령자 사진 자료를 홈페이지에 복원시켜야 한다

 

국립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하 역사관)은 운영을 피해자지원재단에서 맡고 있지만 설립 주체가 행정안전부이므로 실제로는 한국 정부의 관리 아래 놓여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정부는 역사관 및 홈페이지에 왜곡되었거나 누락된 자료들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1965년 한국과 일본 정부는 한일기본조약과 부속협정인 ‘한일청구권협정’을 체결, 일본은 3억 달러의 무상 자금과 2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하고, 한국은 대일 청구권을 포기하는 데 합의하였다.

청구권 자금에 대해 역사관측은 전시물에서 “일부분은 1975년 이후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으로 사망한 피해자의 유족에게 지급됐”으나 “한일회담 과정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반인도적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았”고 “현재에도 일본의 강제동원 사실 부정과 역사왜곡, 우경화가 거듭되고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역사관측의 이러한 설명은 이곳과 홈페이지를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청구권 자금의 성격과 보상금에 대한 지나친 생략으로 말미암아, 피해자들이 일본으로부터 받아야 할 채권이 여전히 존재한다거나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과도한 착시현상을 부른다. 

이러한 오해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박정희 정부가 인명 및 재산보상으로 총 8만3천여 명에게 보상금을 지불한 사실과 노무현 정부에서 21만8천여 건의 피해자 인정으로 보상금을 지불한 정부 자료를 소상하게 공개하는 것이 형평성에 부합한다. 

최근 역사관 홈페이지는 ‘강제동원’ 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그간 역사관은 보상금 증빙 자료이기도 한 사진들을 누구나 보고 다운받을 수 있도록 공개했었는데 갑자기 공란으로 비워버린 것이다. 

이에 한일갈등타파연대(한타련)에서 질의하자 '개인정보 보호'를 그 이유로 든다.

정말 개인정보가 중요했다면 애초에 관련 사진을 올리지 말았어야 하며, 현재 전시되어 있는 사진 또한 철거해야 한다.

특히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사진을 블라인드 처리한 점에 대해 우리는 부분적으로 ‘비강제’까지 강제에 포함된 모순이 드러나자 이를 뒤늦게 은폐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추정한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동원' 방식으로는 1939년 9월 이후가 '모집'이었고, 1942년 2월 이후는 '관알선' 그리고 1944년 9월 이후 약 8개월간 '징용'이 이루어졌다.

또 ‘지원병 제도’에 있어 조선인의 경우 육군에 한해 1938년부터 입대할 수 있었고(해군은 1943년부터), ‘징병’은 1944년 4월부터 8월까지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렇듯 ‘강제동원’ 개념을 ‘비강제’와 구분하지 않을 경우 일제하 전시기 ‘한반도 외(外) 국민징용’과 ‘육군징병’을 합친 38만8천474명이라는 수치는 역사관에 게시된 것처럼 20배 이상 부풀려진 ‘조선인 강제동원 총수’ 782만7천355명과 혼동되기 쉽다.  

물론 일제가 전쟁수행에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벌인 국민정신총동원운동이라는 광의적 강제가 작용한 점은 사실이지만 이는 후일 구체적인 보상금액을 산정하는 기준과는 다른 층위의 논리라 하겠다. 

역사관 홈페이지에는 최근 위안부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이 엿보인다. 일제의 공창제(상업매춘) 아래 전시기에 적용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녀들 모두를 ‘강제동원(강제연행)’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무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상책과 관련한 아시아여성기금과 2015년 한일위안부합의, 한국 정부의 지원책, 그리고 39회로 알려진 일본의 과거사 반성 표명(한국 외교부)에 대해 정직하게 기록하는 것은 역사관측이 반드시 지켜야 할 소임이다. 

우리는 2019년 역사관측에, ‘강제동원 당한 우리 민족’으로 게시된 추도탑 사진이 1926년 9월 9일자 일본 아사히카와 신문에 실린 ‘강제노역에 시달리다가 경찰에 구출된 일본인 노동자'라는 점을 알렸고 역사관측은 이 사진을 철거한 바 있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사실 확인 후 속히 수정한 역사관측의 용단을 높이 평가한다. 

역사란 특정 정권이나 특정 세력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 나치즘처럼 역사를 선전선동의 수단으로 이용하다 재앙을 초래한 사례들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지 않은가. 

역사관측이 한일 외교에 걸림돌이 되어선 안 된다. 역사관은 청구권자금 보상내역을 공개하고 보상금 수령자 사진을 복원해 ‘공정한 역사교육’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2021년 11월 13일 

한일갈등타파연대   
http://historicaltrut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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