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논단] 양들의 침묵
[프리덤 논단] 양들의 침묵
  • 프리덤뉴스
  • 승인 2021.11.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들의 침묵>

박선경(프리덤뉴스 논설위원)

 

토머스 해리스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양들의 침묵’은 아카데미 5관왕의 빛나는 명작이다.

FBI 견습생 클라리스 스털링(조디포스터 분)이 살인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얻으려 희대의 흉악범 한니발 렉터 박사를 만나는 대목이 나온다. 

렉터 박사는 사건을 분석하거나 힌트를 주는 대신 스털링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한다. 

스털링은 어린 시절 경찰관이었던 아버지가 강도의 총에 맞아 목숨을 잃자 삼촌의 목장에서 살게 된다. 

어린 스털링은 삼촌 내외가 양들을 도축하는 장면에 충격을 받는다. 

양들을 구하지 못하고 목장에서 도망친 그녀는 이후, 양들의 울음소리에 시달린다. 

스털링의 트라우마다.

 

영화 ‘양들의 침묵’ 제목의 의미는 관객마다 해석이 다르다. 

양의 도축 과정에서 소나 돼지 등 모든 가축이 죽음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과 달리 양들은 몸 무림 치지도, 울지도 않는다. 

일부 관객들은 영화 제목이 주는 메시지를 무저항, 나약함, 비겁함으로 보았다.

성경에 목자와 양의 비유가 유독 많다. 

양은 번제로 받쳐지는 동물이었는데 솔로몬 성전 봉헌식엔 12만 마리의 양이 희생됐다. 

성경에서 어린 양은 영적 깨끗함, 연약함을 상징하는 기호다. 

양의 비유가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양들의 특성 때문일지 모른다.

첫째, 양은 시력이 나쁘다고 한다. 

눈앞에서 뭔가 보이는 대상이 움직이면 그걸 졸졸 따라다닌다. 

두 번째, 잘 속는다. 

야생 개들은 이런 양떼들의 얕은 지력을 미리 알고 교묘히 좁은 골짜기로 유인해 잡아먹곤 한다. 

세 번째, 잘 넘어진다. 

양의 다리는 단단하지도, 강하지도, 재빠르지도 않다. 

양은 넘어지는 경우가 많고 뛰는 속도까지 느려 맹수가 쫓아오면 잡아먹히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한다. 

네 번째,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한다. 양은 한 번 넘어지면 그대로 '벌러덩' 뒤집어 진다. 

완전히 뒤집어진 양이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스스로는 못 일어난다. 

뒤집힌 채 버둥거리다가 배에 가스가 차면서 혈액순환이 안 되어 죽기도 한다. 

목자가 와서 일으켜 세워 줘야 사는 동물이다. 

다섯 번째, 중심을 잘 못 잡는다. 

뒤집혀 있던 양은 일으켜 세워줘도 금방 중심을 잡지 못하기 때문에 목자는 양이 똑바로 걷도록 몇 초 동안 가만히 붙잡아 줘야 한다. 

여섯 번째, 양들은 방향 감각이 없다. 앞에 야생 숲이 있는지 낭떠러지가 있는지 조차도 구분 못하고 무조건 걸어 들어간다.

일곱 번째, 이기적이고 제멋대로다. 

목자가 없으면 양은 각자 자기 먹이 찾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 멋대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또 새끼 양들이 배가 고파 어미로 보이는 양들에게 다가가서 우유를 얻으려 하면 양들은 매정히 뿌리치고 가버린다. 

대부분의 동물이 자기보다 새끼를 더 아끼고 목숨 거는 것과 비교된다. 

여덟 번째, 위기가 닥쳤을 때 우왕좌왕한다. 

겁이 많아 ‘우두머리 동지’를 따라 덩달아 움직인다.

양은 반드시 양치기 목자가 옆에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으며, 자신을 방어할 만한 능력이 전혀 없는 동물이다.

 잘 속고, 시력은 나쁘고, 뛰는 속도도 느려서 위기에 모면했을 때 목자가 없으면 자생할 수 없는 나약한 특성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선동에 쉽게 휩쓸리고 잘 속고, 방어능력은커녕 저항이나 공격은 생각할 수 없는, 거대 권력 앞에서 한없이 연약하고 무기력한 인간군상과 닮았다.

 

양들은 죽을 때가 되면 온순해진다.

소나 돼지 등 대부분의 동물들이 죽음 직전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과 달리, 양은 죽음 앞에서만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온순해 진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양들의 특성에서 쉽게 유추할 수 있듯 어차피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걸 살면서 체득한 것 같다.

흔히 ‘늑대 같다’는 표현은 잔인하고 음흉한 인간성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표현인 반면, ‘양처럼 온순하다’는 표현은 연약하고 착한 의미로 통용된다. 

늑대는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 사랑하며 암컷과 자기 새끼들을 위해 목숨 바쳐 싸우는 유일한 포유류라고 한다. 

자기 짝이 죽었을 때만 새로운 짝을 찾는다. 모든 무리의 행동을 우두머리 수컷이 지휘하고 통제한다. 

특히 수컷은 외부 침입에 앞장서 싸워 무리(가족)를 보호하고 지킨다. 

사냥한 먹이는 암컷과 새끼한테 양보하고 먹는 동안 주변을 경계하며 가족이 먹고 남은 먹이를 먹는다고 한다. 

나쁜 이미지로 그려진 것과 달리 늑대는 가장 매력 있는 속성을 가진 짐승이다.

원작 소설 ‘양들의 침묵’에서 렉터 박사가 스털링에게 쓴 편지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양들이 울음을 멈추었나? 아마 그 울음은 영원히 멈추지 않을 거야.’ 우왕좌왕하고 무기력한 인간군상의 울음을 그치게 할 목자가 나타나긴 할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