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제 時論] 억압되는 것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야만성
[정광제 時論] 억압되는 것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야만성
  • 프리덤뉴스
  • 승인 2021.11.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광화문 촛불은 야만적 카니발이즘(식인의식)

에고(ego)에 의해 수퍼에고(superego)로 승화되다가, 조건이 주어지거나, 또는 조건이 사라지면, 야만은 우리의 성격이 되고 마는 것

야만이 분출될 조건이 주어졌고, 이드(id)를 억압할 에고(ego)가 사라지는 조건이 주어지자, 촛불이 켜진 것입니다.

탄핵 당시 광화문 현장은 야만의, 심하게 표현하면 카니발이즘 (cannibalism 식인의식)의 현장

억압되는 것이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 인간의 야만성

송산 정광제(이승만학당 이사) 

 

Freud의 심리 모델에 의하면, 이드(id)는 성적인 본능과 공격적인 본능, 숨겨진 기억 등을 가지고 있는 원시적이고 본능적인 요소이고, 슈퍼에고(superego)는 도덕적이고 의식적인 요소입니다.

그리고 에고(ego)는 이드와 슈퍼에고의 욕구를 중재하는 현실적인 요소입니다.

이렇듯 성격의 세 가지 요소는 각자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고, 이들이 하나로 통합되어 한 개인의 성격을 이루게 되며, 각자 따로 또 개인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예전 LA 폭동 때 저는 시카고에 살고 있었습니다.

늦은 오후 모든 TV 가 정규 방송을 갑자기 중단하고, LA 상공의 헬리콥터 중계장면과 해설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

LA에서 폭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시 폭동은 라드니 킹 재판이 이루어진 LA를 시발점으로 하여 애틀란타, 시카고 등 미국 전 지역으로 순식간에 번져갔습니다.

현대사회의 빈부와 인종차별 문제, 문화 속의 비문화, 성숙 속의 야만은 공간적 제약을 그다지 받지않았습니다.

마치 6.25를 능가하는 그 처참함은 원시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인간의 야만은 시간적 제약을 받지않았습니다.

조건만 주어지면 야만은 언제든지 이 시간 여기에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을 하기엔 우리 인간은 너무나 허약한 존재였습니다.

종교와 교육으로 다듬어진 성숙이란 것이 억압으로 구속된 인간 사회의 페르소나(persona 가면)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 그 당시 저의 눈앞의 현실은 그러했습니다.

 

에고(ego)의 정지와 수퍼에고(superego)의 증발, 이드(id)의 분출 현현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파괴와 살인과 약탈, 방화가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 1주일 후, LA에 가게 되었습니다.

LA에 도착하여 대화를 나눈 피해 한인들의 폭동대응은 흑인들의 폭력방식과 별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부유한 한인들이나 자영업에 종사한 한인들은 거의 샷건(장총) 이나 권총을 전부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엔, 죽이려고 달려드는 흑인들에게 대응하여 총을 쏘는 정당한 방어적 행위가 무엇이 잘못인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틀림없이 그렇습니다.

한인들의 방어행위는 정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정당한 방법이 반드시 전적으로 옳은 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돌멩이로 덤비는 흑인들에게 총을 발사하는 것은 정당할 수 없습니다.

굳이 정당하다 치더라도 옳은 방법은 아닙니다.

단지 손쉬운 방법일 뿐입니다.

인간의 야만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단지 에고(ego)에 의해 수퍼에고(superego)로 승화되다가, 조건이 주어지거나, 또는 조건이 사라지면, 야만은 우리의 성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최근에 우리가 목격한 야만은 광화문 촛불이었습니다.

촛불이 야만인 것입니다.

야만이 분출될 조건이 주어졌고, 이드(id)를 억압할 에고(ego)가 사라지는 조건이 주어지자, 촛불이 켜진 것입니다.

탄핵 당시 광화문 현장은 야만의, 심하게 표현하면 카니발이즘 (cannibalism 식인의식)의 현장이었습니다.

그 야만의 무리 속엔 자신을 수퍼에고(superego) 덩어리라 자부하는 지식인들도 서슴없이 서있었습니다.

그들도 흥분을 재촉하고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동원된 무당들의 묘약과 술과 음악에 어깨를 덩실거렸습니다.

어릴 적 은밀한 죄를 지을 때의 묘한 쾌감 이래로, 모처럼 맛보는 이드(id)의 쾌감이었을 것입니다.

인간의 야만은 이렇게 현재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또한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야만성은 미래에도 계속 될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