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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세번의 혁명과 이승만
[신간] 세번의 혁명과 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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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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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의 탄생부터 유학자에서 근대인으로의 변모, 독립운동가로서의 생애, 대한민국 건국과 6.25 전란 극복, 중화학공업과 원자력발전 육성을 통한 산업화의 초석을 놓은 일대기를 쉽고 간결한 문체로 스토리텔링화한 책으로 한 인물의 평전이라기보다는 한국 근대사 총론에 가깝다.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 그리고 투쟁의 일대기를 다룬 '세번의 혁명과 이승만'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1871년 신미양요부터 1965년 이승만의 마지막 모습까지 100여 년에 걸친 격동의 세월을 담았다.

이승만뿐 아니라 근대사 주요 인사들을 이승만과의 유기적 관계성을 바탕으로 상세히 다루고 있는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은 ‘방일영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저술·출판되었으며, 소셜 미디어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에 많은 시민과 단체들이 참여를 통해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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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5

프롤로그................................................................................. 17

제1편

왕정국가의 공화주의자

제1장 절망의 나라.................................................................... 23

1. 패배한 전쟁 · 23

2. 고종과 민비의 시대 · 29

3. 영리하고 이기적인 여인 · 31

4. 준비 안 된 개항 · 34

5. 거꾸로 가는 조선 경제 · 40

6. 강요된 개혁의 의미 · 43

제2장 유학자에서 개화 청년으로................................................. 48

1. 가난한 양반의 아들 · 48

2. 과거에 떨어지다 · 52

3. 배재학당 우등생 · 54

4. 춘생문 사건과 단발령 · 58

5. 불온한 혁명의 꿈 · 61

6. 전설의 시작 · 64

제3장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68

1. 최초의 기자 이승만 · 68

2. 뜨거웠던 만민공동회 · 71

3. 치떨리는 고종의 배신 · 75

4. 거리의 시민들을 이끌다 · 79

5. 미숙한 혁명가들 · 83

제4장 한성감옥 무기수.............................................................. 86

1. 주여 제 영혼을 구해주소서 · 86

2. 국사범이 살아난 이유 · 90

3. 지옥에서 학교 만들기 · 91

4. 그들은 복당이라 불렀다 · 96

제5장 대한제국 밀사................................................................103

1. 자유의 몸이 되다 · 103

2. 미국 대통령을 만났지만 · 106

3. 가난한 미국 유학생 · 114

4. 한국이 망했다 · 117

제2편

식민시대 독립운동가

 

제1장 짧은 귀국과 기약 없는 망명..............................................127

1. 무엇으로 독립을 하겠느냐 · 127

2. 하버드 석사, 프린스턴 박사 · 130

3. 6년 만의 귀국 · 135

4. 망명이 되어 버린 출국 · 140

제2장 희망의 땅, 하와이...........................................................143

1. 하와이로 가다 · 143

2. 한인학교 교장 선생님 · 147

한인기숙학교 분규 | 남녀공학과 여학생 기숙사 | 집념의 「태평양잡

지」

3. Oh! My Brother · 152

박용만, 호방한 모험주의자 | 한인사회의 소용돌이 | 언제나 변함없

는 당신의 형 | 끝내 갈라선 의형제

4. 미국에서 이룬 작은 독립 · 162

한뜻으로 한인여학원 건립 | 교육도 예배도 우리 손으로

제3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167

1. 떠나지 못한 한인 대표들 · 167

2. 승전국들의 파리강화회의 · 170

3. 억울한 위임통치 청원서 · 173

4. 2.8독립선언과 3.1운동 · 175

5. 상해임시정부와 한성정부 · 180

이승만 박사는 어데 있소 | 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 | 거듭된 위임통

치 해명 요구 | 한성정부 집정관

6. 구미위원부의 승리 · 193

독립결의 직전까지 갔던 외교전 | 임시정부의 건설자 안창호 | 재미

동포 후원금을 누구에게 | 마사리크와 데벌레라의 성공 사례. 불후의 명저 『독립정신』 · 100

7. 이승만 상해에 가다 · 202

임시정부를 뒤흔든 분열 | 상해로 가는 험한 길 | 태평양의 외로운

시인

8. 상해에서의 6개월 · 209

이승만 각하 상해에 오시도다 | 임시정부에 대한 도전들 | 임시정부

의 수호자 김구 | 미국으로 돌아가다

제4장 길었던 어둠의 시대.........................................................224

1. 절망의 워싱턴 군축회의 · 224

2. 용두사미가 된 국민대표회의 · 228

3. 고국방문단과 절실했던 희망 · 232

4. 탄핵당한 초대 대통령 · 237

5. 어설펐던 동지식산회사 · 242

6. 동지촌 파산의 뼈아픈 결과 · 246

제5장 다가오는 전쟁의 먹구름...................................................253

1. 조선 청년이 해냈다 · 253

왜 천황을 죽이지 않습니까? | 중국의 백만 대군도 못한 일

2. 제네바 국제연맹 총회의 승리 · 264

3. 나의 사랑 프란체스카 · 270

동양에서 오신 귀하신 분 | 짧았던 모스크바 방문 | 이 박사 혼자만

오십시오 | 프란체스카의 하와이 정착기

4. 하와이에 다시 세운 성전 · 280

5. 요동치는 세계 정세 · 282

6. 예언서가 된 『일본내막기』 · 284

제6장 한국을 독립시킨다..........................................................289

1. 임시정부 승인 요구 · 289

2. 나는 이승만입니다 · 295

3. 광복군의 험난한 길 · 299

4. 독립에 미친 늙은이 · 305

5. 냅코 작전, 독수리 작전 · 310

한반도 침투 게릴라 훈련 | 광복군의 국내 진공 훈련

6. 분노한 이승만의 반격 · 314

7. In Due Course · 317

8. 아! 왜적이 항복을 · 321

천황의 항복 방송 | 무산된 광복군 국내 진공

9. 조국으로 돌아가자 · 325

 

제3편

공산주의에 맞선 자유주의자

제1장 조국으로 돌아오다..........................................................331

1. 급하게 그은 38선 · 331

2. 건국준비위원회와 인민공화국 · 333

3. 우리 대통령은 왜 안 오십니까 · 338

4. 고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 · 340

5. 북한에 정부를 수립하라 · 344

6. 돌아온 임시정부 · 346

제2장 공산주의냐 민주주의냐....................................................352

1. 신탁통치가 뒤흔든 정국 · 352

2. 정읍발언과 미군정의 좌우합작 · 358

3. 피를 부른 박헌영의 신전술 · 362

4.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한다 · 366

5. 김구는 왜 평양으로 갔는가 · 372

6. 목숨을 걸고 투표하다 · 375

7. 자유의 나라 · 378

제3장 희망과 혼돈의 시대.........................................................386

1. 잔혹했던 여순반란사건 · 386

2. 반민특위 활동과 논란 · 389

3. 내 땅에 누우니 왜 이리 좋으냐 · 394

4. 석탄을 캐자 중석을 캐자 · 399

5. 스탈린의 남침 허가 · 402

제4장 6.25 전쟁......................................................................406

1. 전쟁의 시작 · 406

2. 어서 한국을 구하시오 · 411

3. 피로 물든 낙동강 · 415

4. 이승만의 전쟁 지휘 · 421

5. 국군은 북진하라 · 425

6. 중공군의 인해전술 · 429

7. 무너지는 중공군 · 432

8. 이승만의 마키아벨리즘 · 439

발췌 개헌과 대통령 직선제 | 평화선으로 지켜낸 독도 | 세계가 놀란

반공포로 석방

제5장 민족 도약의 발판............................................................449

1. 우리는 다르니 공장을 세워 달라 · 449

2. 힘겨웠던 에너지 독립 · 453

3.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은 교육혁명 · 456

4. 대처승은 나가라 · 459

 

제6장 비극으로 끝난 대서사......................................................463

1. 넘지 말았어야 할 3선 개헌 · 463

2. 국민이 물러나라면 물러나야지 · 466

3. 망명하지 않은 망명객 · 470

4. 이제는 사명을 감당할 수 없나이다 · 473

 

【책 속에서】

p.20 이승만도 돌계단을 올라 배재학당 안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이 한민족의 역사에 얼마나 중요했는지 이승만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건물 안 넓은 복도에는 스무 개의 창문을 통해 쏟아져 들어온 햇살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p.42 고종은 연회를 아주 좋아했고 민비는 허약한 세자를 위해 수시로 고사를 지냈는데, 가난한 조선으로서는 버거운 비용이었다. 고종과 민비가 쓴 돈 가운데 과학과 산업 발전을 위한 투자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pp.53~54 이승만은 8년간 열 한 번의 과거에 응시했다. 그 중에는 남의 답안을 대신 써주어 부잣집 자제를 진사로 만들어준 경우도 있었다. 극심한 생활고가 자존심 강한 선비를 그렇게 내몰았다. 또한 과거시험 부정행위가 너무 만연해 범죄로도 인식되지 않았던 시대이기도 했다.

p.67 이승만의 졸업식 연설은 기록에 남아 있는 한국인의 첫 영어 연설이다. 그에 대한 평판은 이승만의 자긍심을 높였을 뿐 아니라 장차 현실 정치에 투신하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p.88 이승만은 수시로 주리가 틀리는 고문을 받았다. 즉 뒤로 돌려진 팔을 살 속으로 파고드는 끈으로 꽉 묶고, 무릎을 꿇은 다리 사이에 두 개의 나무를 끼운 뒤 통나무로 내리쳤다. 때로는 날카롭게 깎은 대나무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뼈에서 살점이 떨어지도록 눌렀다. 마루 위에 엎어 놓고 살가죽이 벗겨질 때까지 대나무로 후려치기도 했다.

p.102 이승만은 망국의 근본 원인이 천 년 이상에 걸친 전제정치라고 진단했다. 전제정치는 한두 사람이 백만 명 위에 걸터앉아 그들을 노예로 부리는 꼴이다. 노예근성에 찌든 백성은 나라를 자기의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기진맥진하여 타국인이 행패를 부려도 저항할 줄 모른다.

p.129 그런데 이 착한 한국인들에게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서북 출신과 기호 출신들 사이의 심각한 지역감정이었다. 교민단체도 공립협회와 대동보국회 둘로 나뉘어 있었다. 공립협회에는 서북 출신들이 보국회에는 기호 출신들이 많았다.

p.232 이승만이 대통령직을 사임 않고 버틴 것은 독립운동의 궤도 이탈을 막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시정부를 공산주의 혁명에 악용하려는 자들을 경계했다. 그는 사임 압박을 받는 와중에도 임

시정부에 전보를 보내 ‘공산당과 혼잡 마시오’라고 경고했다.

p.270 국제연맹 총회는 만주국을 부인하는 19인위원회 보고서를 41대 1로 채택했다. 반대 1표는 물론 일본이었다. 이승만의 눈부신 승리였다. 그는 여느 독립 국가 대표 못지않은 외교 역량을 발휘하며 워싱턴회의에서의 실패를 깨끗이 만회했다.

p.279 1935년 1월 25일, 드디어 수평선 위로 하와이 오하우 섬이 보이기 시작했다. 프란체스카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이승만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경 말씀까지 되새겼다. 그런데 항구에 가까워지자 부두 위에 수많은 한인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남자들은 양복 정장을, 여자들은 고운 한복을 입고 서툴게 쓴 환영 문구도 들고 있었다. 순간 이승만은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선한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겠다고 다짐했다.

p.303 김원봉은 중국 군부 안에 강력한 인맥이 있었다. 그의 황포군관학교 동문들이 각지에 포진해 있었던 것이다. 김원봉이 황포군관학교 4기로 입학할 때 교장이 장개석이었다. 장개석과 일면식도 없었던 김구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광복군 승인은 계속 지연되었다.

pp.306~307 미국 국무부의 임시정부 불승인 방침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미국 여론 지도층 내의 막강한 인맥을 이용해 줄기차게 국무부를 압박했다. 이승만에게 시달린 국무부 관리들이 그를 ‘독립에 미친 늙은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p.323 일본 육군은 소련군이 참전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여러 차례 입수하고도 내각에 보고하지 않았다. 일본 육군의 이 어리석은 행동 때문에 수많은 일본 국민이 목숨을 잃고 한반도가 분단되었다.

pp.336~337 미군은 남한의 부족한 식량과 석탄을 미국, 일본에서 실어 오고 북한이 전력을 끊은 뒤에는 발전선까지 동원해 전기를 공급했다. 군정 기간은 물론 건국 이후에도 대한민국 예산의 대부분을 미국에 의존했다. 그런데 뭐 하나 빼앗아 간 게 없는 미군은 점령군이고 약탈자인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주장할 때, 두 군대의 포고문은 좋은 선전자료가 된다.

p.375 유어만 총영사는 그동안 후원했던 김구의 변한 모습에 화가 났던지 대화록을 이승만에게 전달했다. 이 문서는 훗날 이화장의 유품을 정리하면서 발견되었다. 대화록을 공개해 김구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힐 수도 있었지만, 이승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가 형제처럼 여겼던 박용만에 이어 김구마저 잃고 싶지 않았으리라.

p.399 토지개혁으로 이 땅의 농민들이 더이상 양반과 상놈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는 실질적인 자유인이 되었다는 점이다. 그 뒤 대한민국은 전 국민이 신분 상승을 위해 줄달음치는 역동적인 사회가 되었다. 1960년대부터 두 세대에 걸친 고도성장의 출발점은 이승만의 토지개혁이었다.

pp.442~443 미국은 이승만의 퇴진을 원했다. 어떻게든 한국전쟁에서 빠져나가고 싶은데 발목을 잡는 이승만 때문에 힘겨웠던 것이다. 미국은 1952년 대선에서 이승만을 패배시키고 유화적인 인물을 당선시키면 휴전협정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미 국무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이 이승만을 대체할 인물을 찾았다. 장면, 조병옥, 김성수, 장택상 등이 후보였다. 여러 미 정부 기관들이 계속 이들과 접촉하며 모종의 암시를 전했다. 이승만은 야당뿐 아니라 미국과도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p.444 발췌 개헌은 이승만 독재정치의 출발점이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발췌 개헌의 내용은 대통령 선출 권한을 소수의 기득권층에게서 빼앗아 모든 국민에게 넘기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이승만의 업적 중 하나로 대통령 직선제를 꼽기도 한다.

p.449 반공포로 석방에 미국 등 참전국 정상들이 격분했다.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자다가 벌떡 일어났다. 덜레스 국무장관이 “최악의 경우 전면전이 불가피하고 자칫 핵폭탄을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처칠 영국 총리는 면도를 하다 놀라 얼굴을 베었다고 전해진다. 처칠은 이승만을 배반자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미국에 이승만을 즉시 구속하거나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내라고 요구했다

 

p.458 시슬러가 말했다.

“대통령 각하, 이게 핵연료봉입니다. 같은 무게 석탄보다 300만 배의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만드는 거요?”

“석탄은 땅에서 캐지만, 원자력은 사람 머리에서 나오는 에너지입니다. 과학기술자를 훈련 시켜야 합니다.”

이승만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리가 지금부터 시작해 원자력을 상용화하려면 얼마나 걸리겠소?”

“한 20년 걸릴 겁니다.”

이승만은 원자력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그러나 끼니도 해결 못 하는 나라가 강대국들이나 겨우 보유한 원자력에 도전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p.458 그날 경향신문은 ‘이 박사 부처 돌연 하와이로 망명’이라는 제목 아래 이승만이 망명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승만의 (퇴임) 소감은 ‘이제 무슨 말을 하겠소. 그대로 떠나게 해주오’로 바뀌어 있었다.

허정 대통령 권한대행이 여행을 간 것이라고 기자회견까지 했지만, 신문들은 이승만이 망명한 것으로 대못질을 했다.

p.478 이승만은 여전히 조국을 위해 기도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행하기에 심신이 모두 감당할 수도 어찌할 도리가 없게 됐습니다. 바라옵건대 한국 민족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시옵소서.”

【저자 소개】

오정환

전북 옥구군 성산면 출생

군산 중앙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한양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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