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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18] 한강을 서울의 얼굴로 만들다.
[전두환 탐험 18] 한강을 서울의 얼굴로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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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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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탐험 [18]

 

한강을 서울의 얼굴로

공항에서 서울로 8차선 들어오려면 올림픽 대로를 타고 한강의 전경을 감상하게 된다.

평균 폭이 1km나 되는 강을 수도에 갖는다는 것은 세계에서도 매우 드물다.

강의 양안에는 푸른 공원이 펼쳐져 있고, 공원의 울타리에는 강변남로와 강변북로가 나린히 달리고, 남로와 북로를 잇는 수많은 교량들이 입체감을 주면서 예술적 경관을 발산한다.

이 공간 예술은 전두환에 의해 1982년 착수하여 1986년에 완공되었다. 한강은 예로부터 있었지만 옛날의 한강은 오늘의 한강이 아니었다.

옛날의 한강은 한강 백사장이 아이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백사장이 없다. 전두환이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훈련을 받을 때, 그는 한강 백사장에 착지했다.

착지하는 순간 악취가 진동했다. 특히 미사리 강물과 백사장은 인근의 광활한 논밭에서 흘러온 인분으로 범벅돼 있었다.

공수 낙하 훈련을 통해 이러한 사정을 익히 알고 있었던 전두환은 88올림픽을 치루기 위해 반드시 한강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에 그려져 있는 한강이 바로 오늘날의 한강이었다.

 

인분과 오폐수로 가득한 한강을 기억하는가

1965년에는 350만이었던 서울 인구가 20년이 지나면서 1,000만이 되었다.

10층 이상의 건물 50%가 한강변에 건설돼 있었다.

1965년에는 1.5억 톤도 되지 않던 서울시 상수도 소요량이 15년이 지난 1980년에는 12억 톤을 넘기고 있었다.

상수도 소요량은 팽창하는데 공장 폐수, 축산 폐수가 마구 한강으로 유입되고, 논과 밭으로부터는 인분과 퇴비가 마구 유입됐다.

가뭄이 들면 바닥이 드러나 악취가 멀리에까지 진동하고 홍수가 나면 주위의 논과 밭이 유실되었다.

전두환은 강 양안을 따라 트럭이 다닐 수 있을 만큼의 커다란 관을 54,6km의 길이에 묻었다.

그리고 이 매머드 관을 통해 한강으로 유입될 모든 오폐수를 중랑, 탄천, 안양, 난지 등 4개 하수 처리장으로 보내 정화시켰다.

퇴적지를 돋우고 다듬어 고수부지를 조성하고 그 위를 공원화 했다.

드넓은 고수부지를 조성하여 유원지, 연못, 낚시터, 자연 학습장, 주차장, 자전거 도로, 산책로, 체육공원을 조성하고 한강에는 유람선을 띄우게 했다.

수중보를 만들어 한강을 홍수도 가뭄도 없는 전천후로 아름다운 공간이 되게 했다.

그리고 210만평의 고수부지를 개발하여 문화 공간과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였다.

여기에는 1조의 예산이 투입됐다.

예산이 없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전두환 주변에도 많았다.

전두환은 한강 바닥에 있는 모래와 자갈이 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 정치인으로부터는 골재 채취가 대단한 이권사업이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다는 말을 들었다.

10km 구간에 대한 골재 채취 허가를 받으면 20km를 잠식해도 통제할 방법이 없다는 말도 들었다.

이때 정주영 현대건설 회장이 한강의 모래와 골재 채취권을 배타적으로 하락해주면 자기가 한강을 전두환이 원하는 대로 싼 가격에 공사를 하겠다고 제의해 왔다.

사정을 파악한 전두환은 김포공항에서 미사리에 이르는 구간을 10대 건설회사에 나누어주는 방법으로 개발 비용을 최소화하라고 지시했다.

골재 가격이 개발비의 20%를 차지했다.

이러한 한강이 있었기에 전두환은 1988년의 하계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룰 수 있었다.

2022.8.14. 지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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