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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는 쿠데타가 아니다.
12.12는 쿠데타가 아니다.
  • 프리덤뉴스
  • 승인 2022.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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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는 쿠데타가 아니다.

 

박선경 박사(프리덤뉴스 논설위원)

 

10. 26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국가 변란사건이다. 10.26이라는 변란이 발생하자 당시 법령에 따라 자동적으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최고 수사책임자가 되는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된 것이다.

10.26이 국가변란사태인 만큼 10.26을 수사하여 범인을 체포하여 관련자를 처벌하는 일은 국가를 중대한 위기에서 구해내는 일이다. 따라서 그 수사 책임을 맡은 자라면 수사 대상자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리하여 모든 진상을 국민들에게 밝혀야할 책임이 있었다.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는 그 시간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된 장소에서 불과 50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당시 수 십발의 총성이 울렸지만, 그는 김정섭 제2차장에게 무슨 총소리인지 알아보라며 식사를 계속했다는 것이다.

그는 내란방조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던 중인 1996년 7월 6일 19회 공판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총성은 단 연발로 2번 내지 3번쯤 짧은 시간에 들은 것으로 기억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일국의 육군 참모총장이 바로 옆 건물에서 나는 총소리를 듣고도 권총소리인지 M16총소리인지 구분을 못하고 멀리서 나는 총소린줄 알았다고 한다면 누가 납득을 할 것인가. 

대통령 시해범 김재규는 허리춤에는 권총을 차고 신발도 신지 않은 채 허둥거리며 피가 묻은 와이셔츠 바람으로 정승화 총장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육군 참모총장인 정승화는 군 통수권자를 시해한 김재규와 함께 급히 궁정동 안가를 벗어나 자신의 지휘소인 육군본부로 갔다. 

김재규는 육군본부로 이동중인 승용차 안에서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는 시늉을 하며 박정희 대통령의 유고라는 사실을 정승화 총장에게 암시했다. 

정승화 총장은 대통령의 시해 현장을 전혀 확인하지 않고 범인과 함께 범행장소를 빠져나간 것이다.

정승화 총장이 시해사건 현장 인근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던 국무위원들은 계엄선포와 동시에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에 임명했다.

정승화 총장은 10.26 과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록 그가 계엄사령관이라고 할지라도 합동수사본부의 수사에 협조했어야 했다.

12.12는 정승화 참모총장을 합동수사본부가 연행하려는 과정에서 연행을 저지하려는 일부 군부의 저항으로 발생한 군 내부의 마찰이었다.

이 군부 내 갈등은 10시간 만에 진압되었고, 최규하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국가적 중대사건이었다. 따라서 이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의혹이 있다면 누구든지 지휘 고하를 막론, 조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고 밝힌 바 있다. 

12.12는 대통령 시해라는 중차대한 역사적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태다. 그런데 어째서 12.12가 군사반란이 되었을까?

12.12 당시 그 중심에 있었던 노태우 대통령의 민자당, 김영삼의 민주당, 김종필의 신민주 공화당은 '과거사를 포용하겠다'는 허언을 내세우며 '구국의 일념'이란 표현까지 써가며 3당 합당에 도장찍었다.

그 후 김영삼은 노태우로부터 받은 엄청난 선거자금과 여당 조직을 활용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김영삼이 12. 12.의 주역인 노태우와 손잡고 대통령에 출마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12.12가 군사반란이 아니었다는 걸 인정한 셈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12. 12. 쿠데타 세력과 손을 잡고 권력을 잡은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김영삼은 대권을 잡은 후 모든 약속을 파기하고 12.12 사건을 군사반란으로 규정, '역사바로세우기'란 미명하에 정치보복을 단행했다.

12.12가 정당한 합수부 수사행위인지 아니면 군사반란인지에 대한 법률적 판단을 하기 보다는 정치권력을 이용해 특별법을 만들어 공소시효 연장이라는 소급입법을 만들었다. 

이 특별법은 정치권력이 검찰과 법원위에 군림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국민들은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영향력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김영삼의 '역사바로세우기'에 열광했다.

김영삼 정부를 거치면서 12. 12는 군사 쿠데타, 5.18은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가 변란 사태에 중대한 수사업무를 수행했을 뿐임에도 정권이 두 번 바뀌자 국가반란의 수괴라는 누명을 뒤집어썼다.

그들은 그렇게 역사를 뒤집어 세웠던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국가적 변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능력으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그는 80년대 고도성장의 주역이자, 21세기 대한민국의 번영의 토대를 잘 다진 후 6.29 선언을 주도하며 권좌에서 스스로 내려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켰다.

동서양을 통털어 군부 실세이자 권력자가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온 예가 있었던가?

전두환 전 대통령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북녘이 내려다 보이는 고지에 묻혀서 통일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고 적었다. 

국민은 이제라도 누가 진정한 애국자인지 눈을 똑바로 뜨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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