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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물] 정금같이 나오리라
[마중물] 정금같이 나오리라
  • 프리덤뉴스
  • 승인 2023.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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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금같이 나오리라

 

梅山 姜賀晶

우하연 作 2023. oil on canvas
우하연 作 2023. oil on canvas

 

거의 1년여만에 친정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장맛비에 피해는 없는지 물으셨다.

비만 내리면 줄줄 새는 지붕 때문에 노심초사하는 나를 염려하시며 이번 비는 그냥 비가 아니던데 어떤지 물으셨다.

 

남편이 이 집을 구하고 고쳐서 쓰려고 했을 때, 그는 지인으로부터 사기꾼 리모델링업자를 소개받았다. 첫눈에 내 맘에는 탐탁치 않았고 계약하지 말자고 설득했지만 남편은 지인의 추천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결국 그 업자는 거액의 돈만 챙겨서 도망갔고 얼마 후 다른 피해자들이 고발하여 감옥에 갔다고 전해들었다.

 

우리집은 그 업자에게 하청을 받아 공사하던 하도급 영세업자들이, 하던 공사를 중단하고 오히려 우리에게 공사비를 청구하는 등 고충을 겪었다.

중단된 전기공사, 중단된 지붕공사, 중단된 바닥공사, 중단된 난방공사, 중단된, 중단된, 그리고 또 중단된, 때문에 새로운 업체를 수소문하고 계약하고 공사를 진행하던 중 청천벽력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무리까지 끝난 방바닥에서 물이 스며나와 흥건하게 젖고, 도어벨은 밖의 영상과 소리만 보이고 들릴 뿐 내 소리는 밖에서 들리지 않고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 그냥 cctv였다. 조명등에서는 스파크가 일더니 등이 모조리 나가버렸다.

원인을 찾아보니 배관공사를 하던 전임 업자가 공사비를 아끼려고 동파이프 대신에 크랙이 있는 중고 PVC 파이프를 사용한 거라고 새 업자가 자기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거였다. 도어벨은 실내에서 외부로 연결하는 문열림 장치는 아예 설치도 되어있지 않고, 조명등은 주변의 습기를 차단하는 테이프를 전선에 감아줘야 하는데 마구잡이로 전선을 흐트러뜨려 놓았고 부분부분 생채기가 있어서 습기로 인해 하마터면 불이 날 뻔했다고 전기업자가 말했다. 게다가 현관 중문은 3중문으로 한다면서 자리만 덩그러니 만들어놓고 문은 정작 달지를 않아 휑하니 뚫렸다. 업자의 강권으로 태양광설치를 한 지붕에서는 기둥을 박은 자리마다 날카로운 나사못이 아래 천정을 뚫고 나와있고 그곳에서는 빗물이 줄줄 떨어졌다.

하자 때문에 공사비는 계속 추가되었지만 집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남편은 어디서 어떻게 연줄이 닿았는지 모를 새로운 업자들과 계속 계약을 했고 선금을 지급하고 기초공사 시작만 한 상태에서 저 세상으로 가버렸다.

 

남편 사망 이후에 한 푼 없는 알거지 꼴이 된 앞날이 막막한 내게 엎친 데 덮친다고 공사계약을 한 사람들로부터 계속 연락이 왔다.

남편이 8월에 갔는데 그들은 가을에 공사를 하기로 했다는 것이고, 중도금과 잔금을 나누지 말고 일시에 지급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남편이 사망했으니 공사를 할 수 없다고 했더니 그럼 남은 잔금을 달라고 했다. 이미 공사에 쓸 자재도 사놓고 공사예정일을 잡아서 다른 공사는 할 수 없게 되었으니 공사를 하던지 하지 않던지 돈은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연락할 테니 그때 해달라고 했더니 그들은 마지못해 그러마고 했다. 그렇게 그 공사들은 2018년 봄부터 조금씩 조금씩 순차적으로 진행됐다.

 

남편이 사망하여 황망한 중에 아이 대학교 등록금과 학비도 말썽이었다. 수석인데도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학교에 방문하여 학과장을 만났는데, 한다는 말이 한 사람만 계속 장학금을 줄 수 없어서 다른 학생에게 주었다는 것이었다. 수석장학금을 다른 학생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말이 되는가? 학과장과 다투다가 학교 방침이라며 냉랭한 그 얼굴에 대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외치고 싶은 걸 꾹 참고 나와버렸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학생 부모가 교수와 친분이 있거나 부모가 교수거나 대학장으로부터 압력이 있거나 하면 벌어지는 불의한 일임을!

 

아이는 엄마가 학과장을 만나러 갔으니 일말의 기대를 가졌다가 분노하고 좌절했다. 다음 학기를 다닐 수 있느냐 학업을 중단해야 하느냐가 걸린 30분의 대화가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나니 아이는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이를 갈고 더욱 공부만 해댔다. 아이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아무 도움도 못되는 엄마여서 너무 창피했다. 남편이 타던 차를 내가 사용하려고 연수까지 받아놓고 결국 중고로 어렵사리 팔아 등록금을 댔다.

 

산다는 것이 바로 시련임을 평생 알고 살아왔지만 그때야말로 삶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시기였다.

덮어놓고 업자들과 계약을 한 남편이 잠깐 잠깐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는 모든 일을 자신이 해야만 한다는 강박에 갇혀있었다. 아픈 아내는 보살펴야 할 대상이었고 대소사를 함께 결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혼자서 결정한 일이 어그러질 때 항상 뒷수습은 내 몫이었다.

 

없는 돈을 어디서 구하겠느냐 말이다. 중지된 공사는 어떻게 마무리하느냐 말이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 낮이고 밤이고 하나님을 불러댔다. 남들이 아는 격식을 갖춘 기도 따위는 할 수도 없었다. 그저 한 번 기도했으면 이미 다 들으신 줄로 알고 있던 내 믿음에 따라 하나님이 해결해달라고 한 번 기도해놓고 이후로는 주구장창 그냥 아버지만 외쳐댔다.

응답이라는 것은 참으로 의외의 사건, 의외의 사람을 통해 온다.

남편의 사망으로 인해 형제들이 지분으로 매입했던 땅을 상속받았었는데 갑자기 그 형제들이 땅을 팔아야겠다고 지분이 있는 나와 아이에게 참여를 독촉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싸인이었다.

마지못해 응하는 것이었지만 그 돈이 꼭 필요했던 나로서는 할렐루야!’였다.

그렇게 남편이 남겨준 땅은 공사비로 다 날아가버렸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도 지붕은 여전히 비가 새고, 보일러 조절기는 해마다 고장이었고, 방 천정에 조명등 뗀 자리는 결국 다시 달지 않고 종이를 오려서 구멍을 막고 붙였다. 전기공사는 너무 큰 액수를 부르니 해볼 엄두도 못 냈다. 그렇게 남편이 가고 7년을 살아오고 있다.

 

이번 폭우에 현관 천정을 막은 플라스틱 판자같은 것이, 떼어낸 전등 구멍으로 비가 줄줄 새다가 물 무게를 이기지 못해 배가 불룩 나왔다. 언제 터질지 몰라 그 아래의 물건을 옮기고, 개집을 입구가 위로 가게 뒤집어 물받이를 만들어놓고, 집안으로 물이 튀지 못하게 우산을 펴 놓았다.

 

아버지께는 그냥저냥 괜찮으니 걱정 마시라고 했다. 솔직히 이제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요량을 하기 힘들어서 터질 테면 터지라는 심정이다. 그리고 과부하가 걸린 머리가 이제는 염려라는 것, 걱정이라는 것을 거부한다.

죽기살기로 재판에 매달리다가 대법원에서 노정희라는 대법관이 불속행 기각을 했다고 변호사로부터 통보받은 날 번아웃이 왔다. 뭘 봐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 자식들이 전화를 해도 어물어물 말을 제대로 못하는 상태. 분명 보았고 들었고 시간이 흘렀는데 정신 차리고 보면 내가 뭐했나 싶은 상태. 까맣게 잊은 시간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멍청한 뇌. 그리고 마치 치매환자처럼 줬던 강아지 사료를 또 주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서야 내가 번아웃 상태인 것을 직시하게 됐다. 백치 상태가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고 차분해졌다. 하나님도 또렷이 보였다. 기도를 했다. 예수가 가르쳐준 그 기도.

 

시간이 꽤 흘러 간신히 번아웃에서 헤어나오기는 했지만 후유증이 길다. 전에는 이런 글을 쓰려면 머리에서 줄줄 쏟아져나오는 대로 타이핑을 하기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한참을 생각해야 하고, 맞게 썼는지 확인해야 하고, 쉬었다가 써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뭐 눈이 점점 더 잘 보이지 않게 된 탓도 있고. 뇌세포가 타서 좀 많이 죽은 것 아닌가 싶다.

 

아버지께서는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럽게 됐냐고 한탄하셨다. 천지에 도둑놈, 사기꾼들이 득실거리고 보이스피싱 때문에 자식들 말고는 전화도 받을 수가 없다고 하셨다. 손자녀들이 살아갈 미래가 염려되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말씀드렸다.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 그러지 마시라고. 부모님은 내가 하나님이나 정치 얘기만 하면 화장실 가야 하니 통화를 끊자고 하시는 분들이시다. 낌새가 하나님 얘기를 할 것 같았던지 아버지는 건강히 잘 있어라.’ 하셨다.

 

사람이 아무리 기를 쓰고 용을 써도 작고작은 물방울이 모인 장마와 폭우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생명까지 잃는 것을 보며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을 생각한다. 내가 나 되기 이전 그분과 함께 하던 때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행복한 그곳, 본향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금이 되기 위해 단련하는 인간생애라는 시기를 고맙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스스로 축복한다.

 

-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23:10) -

 

2023.07.20. 오전6:40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사랑과 존경과 감사를 올리며 아직도 그분을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남았음을 오히려 감사하며.

光明時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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