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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집단기억을 강요하는 징용동상과 낭만적 애국주의
[데스크] 집단기억을 강요하는 징용동상과 낭만적 애국주의
  • 프리덤뉴스
  • 승인 202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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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기억을 강요하는 징용동상과 낭만적 애국주의

 

김기수(변호사, 프리덤뉴스 발행인)

 

대한민국에서 과거역사는 단순한 ‘과거’나 ‘역사’가 아니라‘집단기억’이다. 한국에서는 과거를 정치적으로 해석해 기억을 만드는 풍토가 언제부터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믿는 사람들은 그 기억을 만든 사람들을 조건 없이 추종하며 기억을 만든 사람들이 하는 말을 비판의식없이 자신들의 내면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의 기억과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욕과 차별 심지어는 폭행마저도 정당화된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차별과 폭행, 박해를 가한 가해자들은‘정의’를 실현한 사람으로 영웅시되고, 반면 다른 기억을 가진 사람들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박해당하는 사람들은 정치나 법치는 더 이상 보호막이 될 수 없고 또 보호를 기대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있다. 한국에서의 이 모든 극단적인 현상들은 건국이후부터 오랜 기간 동안 소설, 시와 같은 문학이나, 편향된 역사서술, 그리고 정치적 목적이 암묵적으로 담긴 각종 과거사위원회의 활동결과가 누적되어 나타났을 것이다.

민주화를 표방한 김대중 대통령 집권이후부터 한국에서는 세어보기 힘들 정도의 많은 과거사관련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각종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하였고, 이러한 위원회의 활동결과에 따라 막대한 보상과 유공자예우를 거머쥐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상규명위원회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사의 복원’보다는 ‘있어야할 당위로서의 과거사 복원’에 치중되었다. 각종 진상규명위원회는 자신의 탄생과 활동의 근거가 되는 법률에 암묵적으로 담겨진 정치적 합의에 부합하는 목표의 달성이 중요했

다. 따라서 논란이 된 과거사의 ‘청산’과‘보상’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렇기에 있어야할 ‘당위’로서의 과거사복원은 어쩌면 각종 위원회활동의 당연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국가적 차원의 진상규명활동결과가 국민들 개인의 기억과 이나 객관적 역사적 사실과 배치되는 것이 있더라도 그 잘못된 부분을 교정할 수 없었다. 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보통 금전적 보상과 직결되었기 때문에 ‘희생자’로 법률에 규정된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한 판정이 더 중요했다. 따라서 과거의 기억과 상흔을 호소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법제정의 목적달성에 우선 충실했다.

한국 대법원은 2018. 10. 30. 전원합의체를 열어 2005년도부터 13년간 계속된 징용공위자료청구소송을 종결하고 1965년도 한·일간 청구권협정의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이로써 한일청구권협정과 후속조치들로 인하여 봉쇄되어 왔던 한국인의 일본기업에 대한 한국법정에서의 소송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다. 최소한 한국법정에서는 한국인의 일본국 기업에 대한 개인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대법원이 확정해주었기 때문이다.

건국 후 70년이 넘은 시점에서 한국법정에서 벌어진 이 국제소송의 결과는 과거사와 관련된 소송을 맡을 한국변호사들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이 더 이상 법적안정성이나 재산권이 절대적으로 보장되는 국가가 아니라는 국제적 인식을 피할 길이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라는 로마법의 법언처럼 국제간의 약속도 ‘법’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국가별로 제정되는 ‘법률’에 국민이 기속되듯이 국가간의 합의도 ‘법률’에 준하는 대우를받아야 하며 국민들이 준수해야 한다. 대한민국국민 개인은 국가간의 약속인 조약이나 협약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대법원이 판결한 것은 대한민국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킬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임은 차치하더라도‘정의’와 ‘법적안정성’이라는 ‘법’의 두 기둥 중 하나를 무너뜨린 것으로서 비판받아야 한다. ‘국제재판관할권’‘소멸시효’‘기판력’등의 법리적문제점을 대한민국의 ‘공서양속’이라는 하나의 일반원칙으로 과감하게 뛰어넘는 판결을 하였는데 이러한 판결이 나올 수 있었는 이유는 바로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이미 ‘강제연행’이라는 ‘집단기억’에 포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징용노동자상 건립’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 동상의 설치가 합법적인 절차나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징용노동자동상이 과거의 실제 징용공의 모습과 다른 상징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징용노동자동상은 ‘배고픔’‘강제동원’‘헐벗음’‘노예적 노동’‘강제수용소’를 연상시키고 있다. 이러한 동상설치는 과거를 재해석하여 ‘강제연행’이라는 집단기억을 만드는 정치적 행위일 뿐이다. 결국 이러한 집단기억을 만드는 행위는 그 만들어진 기억에 길들여진 군중에 의하여 추앙받는 ‘권력만들기’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사실과 다른 상징은 결국 ‘토템’이자 ‘정치적조형물’에 불과하다. 저들은 동상을 통해 상징되는 집단기억에 추종하는 군중을 양산하려고 시도하지만 나는 나와 나의 가족들, 나의 친구들이 ‘기억의 정치’에 억눌리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와 나의 가족들, 나의 친구들의‘기억을 강요당하지 않을 권리’를 지키려고 한다.

개인에게도 과거에 대한 청산과 회복 그리고 치유가 필요하듯 국가도 그러 것들이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청산이 정치적 의도로 자행될 때에는 화해와 치유가 아닌 더 깊은 굴종을 강요하는 시발점이 될 것이다. 국민 개개인이 스스로의 경험과 판단에 따른 기억을 만들지 못한 채 선악과 흑백의 이분법에 따라 만들어진 ‘집단기억’을 주입당하는 사회가 바로 전체주의 사회다. 우리는 기억을 강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온전히 보유해야만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다. 거리마다 정치적 조형물이 넘치는 사회가 바로 독재국가이고 전체주의 국가다. 이제 더 이상 후세대들에게는 과거의 아픔을 현재에 재현하여 정신적 외상을 가하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과거사청산은 과거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과거의 아픔을 재현하여 그 과거의 기억을 새로운 세대에게 주입하여 분노와 저주의 감정을 가지도록 해서는 안된다. 한국에서의 ‘징용노동자상’설치는 과거의 아픔을 절대화, 우상화할 수 있는 매우 좋지 않은 과거청산의 탈을 쓴 정치극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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