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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개정에는 한계가 없는가?
헌법은 개정에는 한계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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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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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개정에는 한계가 없는가?

 

김기수(변호사)

 

근대국가로의 발전이 늦은 국가일수록 대륙법계 성문헌법을 가지고 있는데 대한민국은 대륙법을 계수한 제국주의 일본의 영향으로 댁륙법 특히 독일법의 영향이 매우 지대하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도 독일 기본법의 영향이 적지 않으며 국내 헌법학자들 대부분 독일법 전공자에 속한다. 독일의 법철학은 자연법을 부인하는 법실증주의의 영향이 지대하다. 법실증주의의 대가인 옐리네크는 ‘법은 사회적인 사실이 국민적 동의를 얻은 것’이라고 하면서 ‘법은 완성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옐리네크에 따르면 국가는 스스로 법을 만드는 권리능력을 가진 법인이므로 어떤 구속도 없이 스스로 규범을 창출하기 때문에 헌법은 스스로 정당성을 가지면 헌법의 제정과 개정에는 어떠한 한계도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이 1919년 제정한 바이마르헌법의 철학적 토대를 마련한 칼슈미트는 예리네크의 국가 대신에 ‘헌법제정권력’이라는 개념으로 ‘헌법은 헌법제정권력이 자신의 존재형태에 대해 내린 정치적 결단’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논리나 사상에 의하여 정당화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다만 그는 ‘근본헌법’과 ‘헌법률’을 구분해서 헌법률만 개정할 수 있고 근본헌법은 개정될 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옐리네크나 칼 슈미트나 ‘성문헌법’이 되기만 되면 스스로 정당화된다는 논리를 펴는 점에서는 모두 법실증주의자에 속한다. 이러한 비판을 피하기 위하여 독일에서는 ‘현상학’에 바탕을 둔 ‘통합주의’라는 헌법이론이 등장하였으나 이 또한 법실증주의에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칼슈미트가 헌법개정의 한계로 든 근본규범 역시 개념이 모호하고 형이상학적인 점에서 자연법과는 다른 개념이다. 칼슈미트가 주장한 근본규범도 국민주권주의에 기초한 헌법제정권력의 결단 여하에 따라서 얼마든지 근본헌법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옐리네크 헌법을 국가가, 칼슈미트는 헌법은 국민이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국가나 국민이 만들기만 하면 어떤 헌법도 자체로 정당화된다는 의미가 되므로 모두 진정한 의미의 법실증주의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법실증주의에 기반한 바이마르 헌법에서 나치가 등장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법은 자기는 물론 타인에 대해서도 보편타당해야 한다. 이러한 보편타당성이 없다면 법이 규범력을 가지기 어렵다. 법이 이러한 규범력을 가지는 이유에 대해서 법실증주의자들은 ‘힘’ ‘권력자’에 의하여 명령되었기 때문에 효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나 법은 그 내용 자체로 정당하지 않다면 규범력이 부인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이 성문헌법이기는 하지만 내재적으로 헌법개정의 한계가 되는 조항이 있다. 예를 들어 헌법이 개정되면 헌법의 자기정체성이 무너지는 경우에 그런 한계가 있다고 해야 한다.

헌법은 국가의 기본법칙으로 국가권력이 근거이자 국가권력의 통제의 원리이기도 하다. 헌법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체로 헌법은 그 국가의 정체성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표지다. 국가가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국가의 정체성 확립의 문제이다.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으면 개인이나 국가나 혼란과 갈등을 해결하기 어렵고 나아가 지속가능한 미래도 보장받기 어렵다.

역사적 사실을 헌법 전문에 삽입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을 규범화하여 강제력을 부여함으로써 국민들에게 역사적 사실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국민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 정치적 자유, 표현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한다. 역사적 사실을 최고 규범인 헌법에 삽입한다는 것은 헌법개정권력에 의한 폭거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역사적 사실이 헌법에 삽입되는 순간 그 역사적 사실은 법실증주의자 옐리네크가 말한 ‘완성된 사실’이 되어 국민적 동의는 자동으로 의제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헌법개정권력을 가진 정치권력의 자기합리화나 자기정당화를 법적으로 포장해주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역사적 사실이 헌법에 삽입되는 순간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내심 동의하지 않거나 헌법전문 개정에 반대표를 던진 국민들의 경우 그들의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심각하게 침해될 수 밖에 없다. 헌법 개정에 국민 100%가 투표에 참여하고 100%가 개정안에 동의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결과는 피할길이 없다. 역사적 사실이 헌법개정절차를 통해서 헌법에 삽입되면 전면적인 국민의식의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국민 개개인의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침해가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개개인의 양심과 사살을 교정하는 대재적인 작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국가로서도 그렇고 국민개개인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북한의 헌법은 역사적 사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북한에서 ‘정신교화’ ‘노동학습소’를 통한 사상개조가 정당화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이 삽입된 헌법은 국민 개개인 모두에게 보편타당한 법의 본질을 왜곡시키게 된다.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실이 기재됨으로 인하여 그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유공자의 자녀들은 대대손손 영예(榮譽)와 특별한 대우를 받게 되는 근거가 마련된다. 헌법 제11조는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 ③훈장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헌법 제11조에 위반되는 법률이 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가 이를 용인하고 있는 이유는 대한민국 헌법에 역사적 사실로 3.1운동과 4.19가 삽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헌법 제11조는 근대국가의 헌법으로서 손색이 없는 조항이지만 헌법 전문은 전근대적이기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사회적 특수계급이 엄연히 존재한다. 5.18을 민주화운동로 만드는 것은 이미 법률로 공인되었다. 5.18을 헌법전문에 삽입하자는 주장은 이러한 법률의 헌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 주장 자체가 5.18 유공장에 대한 각종 혜택을 주는 법률들의 헌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헌법 제11조를 배제하는 특수계급의 창성을 의미하는 역사적 사실을 헌법 전문에 삽입하기 위하여 헌법을 개정하는 것은 헌법 스스로의 자기부정이면 자기정체성 혼란에 다름이 아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역사연구자들, 언론이, 지식인들이 법다운 ‘법’이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나찌를 탄생시킨 법실증주의는 우리 옆에 성큼 다가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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