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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학 칼럼] 무궁화와 진달래
[김문학 칼럼] 무궁화와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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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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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와 진달래

 

 김문학(문평비평가, 비교문화학자)

한국의 꽃은 무궁화이지만 연변의 꽃은 진달래다. 따라서 조선족은 무궁화에 대해서는 모국의 국화 라는 것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진달래에서 더 공감을 느낀다.  지금까지 조선족 시인들이 진달래를 읊은 시를 묶어도 한권의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의 시집을 만들 수 있다. 진달래꽃에서 붉은 피를 만주벌판에 벌린 조선족 투사와 동북땅을 개척한 조선족의 모습을 찾는다무궁화꽃 모습과 진달래꽃 모습이 다른 만큼이나 한국인과 조선족은 이미 이질된 동족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중수교이후 한국인과 조선족의 만남이 찾아짐에 따라 서로 생각했던 한 핏줄, 한민족이라는 것보다 이질적인, 다른 구석구석들을 확인하면서 당혹하고 냉담해지며 때로는 불신으로까지 에스컬레이트 해온 불쾌한 체험이 이 이질성을 단적으로 그리고 보편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1992년 한국의 k교수가 처음으로 연변을 방문하고 난 뒤, 나에게 이렇게 술회했다.

반세기동안 이별과 단절 끝에 처음 만나는 얼굴이라 감격과 반가움을 기대했는데 사실 만나고 보니 부풀었던 기대만큼이나 실망이 컸어요.  왜냐하면 우리 한국인 관광객이 오만하게 조선국을 대한 것도 있겠고 거기에 대한 반감으로 조선족이 냉담해진 것도 있겠지만 양자지간의 그동안 이룩한 격차가 백두산 높이 만큼은 높이 쌓인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에 의한 한민족의 세계관이 달라졌을 겁니다.”

그때 나는 k교수의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뜨덕였다요즘 한국기업이 중국땅에 적극 진출하여 현지의 조선족 동포를 직원이나 관리원으로 등용하여 서로 같은 동포의 동질성을 크게 믿었는데 믿었던 것 만큼 이질성이 노출돼 쇼크를 받거나 불신을 빚어낸 케이스가 자주 있었다. 심양에서 제조업을 하고 있는 한국의 C사장을 오래전부터 안면있는 분인데 나를 만나자마자 하소연을 털어 놓았다.

같은 동족이라고만 생각했더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서로 말은 같지만 그 속은 중국인이랍니다. 전통적인 민족 습석이나 언어는 똑같지만 조선족의 사고방식은 근대 중국사회주의랄까 공산주의랄까 그런 체제에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많고 곤란을 많이 겪습니다. 이거 뭐 해소하는 비결이라도 없습니까? 김문학씨 어디 한번 비교문화의 입장에서 좀 가르쳐 주세요말하는 그의 모습이 응석부리는 아이 같았다. 나는 C사장의 하소연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만큼 기업가로서 하는 일과 관계되는 심각한 사연이어서 웃을 수도 없었다

C사장은 이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장에 사원으로 30여 명 정도의 조선족 남녀를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번은 연말 보너스로 출근율에 따라 매 사람들에게 내주었는데 이것이 말썽이 터질 줄은 몰랐다길림성에서 온 조선족 사원이 그날 저녁 C사장의 숙소로 찾아와 할 말이 있다고 했다무슨 일이냐 했더니 두 사람의 보너스액이 같지 않은 것을 문제로 걸고 들었다.

저와 이 친구는 같이 있으니 보너스도 같게 주시면 좋겠습니다. 정 안되면 저의 것을 잘라서 이 친구에게 주실 수 없겠습니까?” 나이가 약간 위인 사원이 이런 엉뚱한 간청을 하는 것이었다. 보너스가 적은 이유는 출근율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해도 듣질 않는다. “우리 중국에서는 예전 직장에 있을 때 모두 같은 상여금을 탔어요(큰 가마밥을 같이 먹기에 평균주의 체체를 말함). 상여금도 누구하나 차별없이 꼭 같게 주는 것이 원칙인데 C사장님은 왜 이런 것을 무시했습니까?”

나중에 겨우 한국의 자본주의적 원리원칙까지 들먹거리며 장황한 설명을 해서야 겨우 돌려 보낼수가 있었다. 하지만 C사장은 어쩐지 가슴 한구석이 석연치 않았다고 한다. 역시 한국과 중국은 다른 나라이고 사람들의 가치관도 틀리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고 C사장은 술회한다

 

조선족의 공산주의 의식

C사장의 분석이 아주 정확했음을 우리는 금방 알 수 있다. 체제라는 문화, 즉 제도와 문화가 그 안에 사는 인간의 의식구조를 지배하는 제일 큰 팩트라는 것을 감안하면 같은  혈연적 동질성을 갖고 있는 민족이지만 자본주의 자유 세계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의식 세계로 갈라진 것이다그것은 민족을 초월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조선족은 민족 고유의 유교를 비롯한 가치관을 갖고 중국에 들어왔다. 그것이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끊임없는 공산주의 체제속에서 한국인의 자유세계 의식과는 다른 의식세계를 구축했던 것이다.

공산주의 가치관에서도 시종일관 강조되는 것이 있다. 그 것은 그 공산주의 란 명칭이 시사해주듯이 서로 같이 평등하게 분배하며 인민대중을 위해 봉사해야 하는 것이며 이념이자 목적이다. 즉 개인의 가치보다 나라나 전체 인민의 이익이 클로즈되고 절대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를 위한 경쟁이나 개성 가치는 개인적 부유는 자산계급의 썩어빠진 가치관념으로 적대시의 대상이 되었다. 다 같이 잘 살고 못 살아도 다 같이 못 살아야 되는 것이 공산주의의 그로데스크한 의식체계다.

 

한국인과 조선족의 큰 갭

위에서 언급한 보너스 사건에서 조선족의 의식이 바로 절대적 평균의 공산주의 의식의 발로다, 오랫동안 폐쇄된 사회주의 체제안에서 경쟁이 없는 계획 경제의 안일한 환경속에서 다 같이 이른바 큰 가마밥을 먹던 습관은 자본주의 자유세계의 개방의식, 경쟁의식과 경제의식이란 애초부터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런 의식구조하에서는 경쟁의식과 모험의식이 결여되어 일을 해도 자기일 만큼 열심히 하지 못한다. 서울에서 3D노동에 뛰어든 조선족이나 중국의 한국기업에서 고용된 노동자를 보면 흔히 경업정신 직업의식이 결여하고 일에 태만하다는 평가를 심심잖게 받는 것은 여기서 비롯된다.

또 한가지는 중국의 공산주의 체계하에서는 남녀평등 여성해방의 캐치프레이즈가 성행한다. 그러나 여성은 가족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의 생산성 노동에 종사하면서 남녀평등의 지위를 확보하였다. 조선족 부부도 절대 다수가 맞벌이 부부다. 그들에게 절대적인 남성의 권의의식은 꺠어진 지 이미 오래다. 아마도 이런 결과는 중국 사회주의 시스템이 조선족의 가부장적인 전통을 없애버린  전형적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남성의 경제적 우월감이 있는 것이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권위의식이 약회되고 소위 여성상위의 형태가 이루어진다. 조선족의 이혼에서 여자가 주도적 위치에 있는 것도 남자가 버림을 당하는 일이 많은 것도 이같은 권위의식의 부재와 여성상위의 체제가 한 몫을 하기 때문이다조선족들 사이에 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그들이 한국인과  한국에 대한 이질감을 느끼는 이유는  한국의 개인주의적 서구문명과 경제관과 조선족이 이미 체화하고 있는 공산주의적 평균의식의 충돌이다. 요즘 중국의 개혁 개방정책 아래서 자유세계의 우월성과 금전의 가치에 하루 아침에 눈뜨기 시작한 조선족이 그 현란한 세계앞에서 미증유의 체험이라 미처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성찰할 시간도 없이 금전만능의 가치관으로 급속히 변질해가고 있다. 이것은 그 자체가 진보이며 하나의 방향이기도 하다.  조선족들은 공산주의 의식체계와 자유주의의 의식체계에서 오는 깊숙한 갭을 무난히 조절하는 체질을 키워야 한다.

 

조선족은 왜 중국인인가

조선족의 의식세계는 일조일석에 바뀌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장기간 공산주의 체제의 나라안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정치적 운동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대부분이 아직도 사회주의 공손주의에 대한 신앙을 수집하고 지키고 있다고 봐야한다따라서 종교도 대부분 마르크스주의와 모택동의 세계관을 신앙하며 종교를 신앙하는 인구는 전체 인구의 4%정도밖에 안 된다고 한다조선족은 역사상 일제와 중국내 각종 대지주, 대자산 계급의 압박을 감내했으며 특히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아 만주에서 항일 투쟁을 끈질기게 벌인 역사적 체험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정, 양림, 이홍광, 양세봉 등 항일 장령들이 배출되었으며 중국독립의 해방전쟁에서도 위대한 공훈을 세워 소수민족으로서의 당당한 자리를 굳혔다.

지금도 절대 다수의 중국 조선족들은 중국인으로 생각하며 중국이 조국이라고 하는 것이 특징이다한국과 북한에 대한 입장도 동등한 위치에 놓고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기대하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축구 시합 관전에서는 대부분 중국을 응원하지만 또한 김대중과 김정일의 역사적 악수와 남북이산가족의 눈물 겨운 상봉을 TV에서 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중국 조선족이다.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성원을 보내는 것 역시 조선족이다.  조선족, 그리고 한국인 우리는 이제 서로 양자의 이질을 보다 인정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민족과 핏줄을 추월한 하나의 이질된 타지로서 보아야 서로 냉철히 그리고 공정히 상대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리도 서로 타자로서 존중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무궁화와 진달래

한국인과 조선족의 특징을 상징적으로 시사해 주는 이질된 모습을 우리는 이제 투철히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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