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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컬쳐플러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이경희 컬쳐플러스]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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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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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소설가 이경희

 

짧은 10월이었다.

오래전 미리 예정했던 긴 여행을 다녀와야 했고, 지방 대학병원 소아과 의사인 언니 아들 결혼식 때문에 몇 번 지방을 다녀와야 했다.

자식을 버젓이 키워 결혼을 시키게 된 언니가 부러웠다.

하지만 참석을 벼르던 연로하신 엄마는 결국 참석할 수 없었다.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막내동생이 엄마 곁을 지켜야만 했다.

자식을 낳아 결혼할 만큼 키워내는 일이 우리에겐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다.

화분에 물 주듯이 딱 예상한 그 정도만 자라주거나 견뎌 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20년 전쯤의 일일 것이다. 3인 입시생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쳤던 적이 있다.

S대 의대를 준비하던 아이들의 그룹이었는데 그중 한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

엄밀히 따지면 본인이 아니라 반 친구 K의 문제였다. 5월 중간고사를 앞두고, 모의고사 결과를 접한 K의 부모님은 생각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자 K를 앉혀놓고 심한 꾸중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에게 익숙한 너 그러다 뭐가 될래?’, ‘인생 허비하지 마라’, 등등의 말씀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매우 예민한 상태였던 고3 입시생 K, 결국 불안한 마음을 못 이겨 아파트 아래로 몸을 날렸다고 한다.

K가 세상을 버린 날은 어버이날 즈음의 5월 어느 날인 것 같다.

늘 듣는 꾸중이었을 텐데, 그걸로 아이가 뛰어내려 유명을 달리하게 된 걸 알게 된 부모는, 너무도 놀라고 황망했을 것이다.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꾸중이었는데, K에겐 무엇이 치명적이었을까, 부모는 찾아보고 싶었던 것 같다.

부모는 K의 소지품을 뒤지다, 결국 K의 책상 서랍에서, 곱게곱게 포장된 카네이션꽃과 쪽지 한 장을 발견하게 된다.

어버이날 감사합니다, 낳아주시고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쓰인 리본이 달린 꽃과 메모였을 것이다.

그것을 찾아 읽은 부모의 마음을 20년이 지난 지금, 감히 되짚어보고 싶지는 않다.

나도 한때는 입시생 부모였고, 또 한때는, 창밖을 뛰어내릴지, 달리는 차에 뛰어들지 고민하던 천방지축 청춘인 자식의 부모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파서 청춘이고 행복해서 청춘인 그 시절의 아이들은, 자신이 무얼 향해 달리는지도 모르고 폭주를 하고 있었던 것같다.

K, 그리고 나의 아들도. 지나고 나면 한시절의 패기 어린 시간이라 기억할지 모르지만, 부모는 자식의 그런 패기가 불안하고 불안해 가슴 졸이고 조바심 내며 기다리는 그런 존재인것이다.

부모는 그렇다. 행여 자식이 나를 쳐도, 나를 밟고 지나가라고 훌렁 몸을 내주는 그런 존재다.

그리고 그런 존재가 되었다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존재다.

왜냐하면 그들이 조건 없이 나를, 부모라는 우리를, 믿고 의지하기 때문이다.

엄마여서, 아빠여서, 내 품 안에서 뛰어내리고 내 품 안에서 날아오른다.

비로소 부모라는 나의 품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기에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걸 본능으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죽었다. 거기에 어른 몇이 섞여 있었다 해도 달라질 건 없다.

그도 역시 누군가에게 아이였을 것이므로. 따뜻한 품을 내주는 사람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모다.

부모가 얼마나 나이 먹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식이 얼마나 나이 들었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부모니까 그가 자식이면 된 거다. 만사 통과다. 자식이니까. 그리고 나는 부모니까.

아이들이 죽었다. 아직은 푸르고 푸른, 아이들이 죽었다.

화사한 꽃을 피우기에도, 단단한 열매를 맺기에도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던 아이들이, 꽃잎보다 먼저 바람을 만나 흙에 묻혔다.

 

10월이 너무 지독하다.

아무 일도 없었더라면, 이라고 가정하고 싶지 않다. 아무 소용없으니까.

그러니 모두 내 탓입니다, 라고, 누군가 말해주면 안 될까? 특히 당신이면 좋겠다.

그래야 아이를 잃고 내장이 다 털려, 너덜너덜해진 우리가 다리를 푹 접고 당신 어깨에 기대 목놓아 울음이라도 울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당신은 우리의 책임자니까. 그러니까 당신, 내 탓이오, 내 탓이오, 외쳐주면 안 될까?

바로 그가 당신이니까.

어떻게 부모를 탓하니? 묻지 말고 제발 당신, 우리의 책임이 당신의 것이라고, 모두 다 당신 탓이라고 사과해주세요.

우리는 당신을 믿고 사랑하니까요.

그 어깨에 내 마음 기대고 싶으니까요, 제발.

 

소설가 이경희 프로필

2016년 중앙일보에 장편소설 '제8요일의 남자'를 연재했으며 단편소설로는 '작약' '연의기록' '전생을 기억하는 여자' 등 다수를 발표했다.

제19대 국회의장단 홍보기획관을 지냈으며, 국회도서관 국회보 편집위원, 일간지 문화부기자, 경기도 공무원교육원 겸임교수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JTBC 드라마 '품위있는그녀' 원작소설 1,2와 예술치유에세이 '마음아 이제 놓아줄게' 등이 있으며 조선일보 조선PUB에 문화칼럼을 연재했으며 현재 에브리북에 소설 '엘리자베스 캐츠아이'를 연재 중이다.

*작가 이경희의 <컬처플러스>에서는 책과 영화, 음악, 드라마 등등의 작품과 더불어 종교와 역사이야기를 더해 소소한 인생이야기를 나누는 코너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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