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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학 칼럼] '한국병합'에 노정된 한국의 결함분석
[김문학 칼럼] '한국병합'에 노정된 한국의 결함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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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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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병합에 노정된 한국의 결함분석

 

김문학(재일 비교문화학자, 문명비평가)

필자 김문학

 

약소국인 이웃 한국에 대한 강대국 일본의 한국병합은 현재 한국인의 반일감정을 유발하는 뿌리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병합 후 구체적으로 실시된 정책이나 운영에서의 명암에 대한 프리즘 분석이 중요하다. 그것은 반드시 내실을 규명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사항이다. 한국인의 반일은 사실은 타자에 대한 비난에만 편향된 나머지 자신의 책임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망각하고 있다역사의 주인공이 타자와 자기로 이루어졌을 때 타자에 대한 비판, 특히 감정적 비난과 절하만으로 고집하면 자신에 대한 반성, 사색의 기회를 스스로 결락시키게 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원인은 타자와 자기 양측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한국병합에서 일본에게 병합의 구실을 준 우리 자신, 우리 민족의 100년 전의 원인을 반추해봄으로써 그동안 우리가 게을리했던 자기 성찰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아마도 필자의 이런 논지는 지금의 일반대중들에게는 수용되기 어려울 것이다. 심지어는 안이하게 상대방의 편을 든다는 감정적 비판이 동반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바로 이런 안이하고 감정적 이유로 반성을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서는 비판의 메스가 절박하게 필요하다필자는 역사를 해독함에 입장은 늘 아래와 같은 두 가지를 취하고 싶다. 하나는 경직되고 감정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유연한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역사의 지나간 불행은 타자에게만 넘기려는 성향이 강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이제는 편견없이 자타의 복합적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고방식, 역사읽기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리고 늘 타자 탓만하기에 앞서 자신에게 원인을 찾는 성숙한 사고와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아는 한 한국병합을 당한 원인을 조선조 한국측에 내부에서 철저히 규명한 인물은 유감이지만 지극히 드물다. 또한 그런 인물은 매국노로 지탄 받을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병합을 세계근대사 및 동아시아 근대사의 시야에서 살펴보면, 조선조 말이나 20세기의 초반까지도 문명개화에서 수동적이었고 태만했으며, “전쟁과 혁명이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지 못했다즉 일본은 문명개화에 대응하여 신속히 메이유신을 통해 또한 두 차례 전쟁(청일, 러일)을 통해 국민국가라는 독립자주국으로 강력한 나라로 탈바꿈하지만 한국은 1910년까지도 여전히 일본이나 서구에서 보자면 문명이 아직 어두운 조용한 은둔의 나라였다조선말기의 사회는 사실 우리가 지금 인식하고 또한 상상하고 있는 모습과는 상당히 괴리된 모습이었다. 서양인의 기록이나 조선 지식인의 기록을 종합하여 보면 알 수 있는데 그때까지 조선조 사회는 여전히 농후한 노예제도가 대대로 존속했다.

고려조가 정한 노비안검법, 노비환천법이 조선조에서도 노비변정도감과 장례원을 설치해서 노비를 집중적으로 관리했으며 노비제도가 사회의 근본원리의 하나가 되었다. 평론가 복거일은 이전 노예제도가 근 천년을 존속해왔지만 그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었다고 지적한다. 노비제도를 없애고 조선인이 법안에서 평등함을 이루게 한 것은 1894-95년 사이의 갑오경장이라는 혁명적 개혁조치였따. 그것이 일본의 강요에 따랐다는 하나만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 사실은 일본의 압력이나마 일본을 모델로 한 개혁이 성공했던 것이 사실의 핵심이다. 만약 갑오혁명이 성과가 뚜렷하게 못했다고 비난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민비 등 조선왕조의 수구화 정책에 의한 탄압 때문이다. 1883-85년의 윤치호 일기를 보면 당시의 사정을 잘 알 수 있다. 그는 당대의 탁월한 개화파 지식인의 한사람으로서 조선조의 결함을 서양과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잘 인식하고 있었다.

대저 우리 나라 인민은 무식하며 전재가 아시면 꾀어 살 수 없습니다

상께서 비록 좋은 것을 알고 또 행하려고 하니 하나 주저하고 의심이 많아 잠시의 평안함을 얻으려하며 소간들에게 현혹되어 능히 결단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니 일의 성과는 얻기 어렵고 꾀하는 것은 많으나 실적은 없게 된다. 아아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가 없는 것을 하늘의 명이라 하니 이것이 하늘의 명인가

서양 남녀들이 세상을 횡행하나 능히 대적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니 문명의 귀중함이 부럽다. 우리가 미치지 못하는 것이 가장 원통하고, 우리나라가 떨치지 못하는 것이 매우 근심스럽고, 일본인들이 능히 변화한 것이 참으로 대견스럽다” (이상 윤치호 일기 소병기옮김)

당시 조선 정부에 대해 철저히 실망한 지식인들이 눈길을 돌린 곳은 일본이었다. 조선 정부가 하지 못할 모델을 국제적 시야를 갖춘 그들이 서구 문명 수용에 성공한 일본을 배우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국에 유학하면서 그 선진 문물을 배우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다일본식민통치에 통렬히 비판하고 한국에 대해 가장 동정심을 품고 있던 당시의 영국인 지식인 프레더릭 매켄지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관찰하면 오늘 한국이 독립을 상실한 이유는 구 조선왕조의 부패와 취약성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그는 제3자의 눈에서 바라본 역사 비극의 책임원인이 조선인 자신에 있었다고 지적한다. 1904년에 등장한 일진회는 현재 무조건 친일단체로 일축하지만 이용구 등 인물들은 조선조, 한국의 적극적인 개혁을 회피한 정부에 실망하여 일본과 합방하여 나라를 개척하자는 구상을 갖게 되었다. 이는 자연적인 개혁 수단의 하나였다. 일진회는 김옥균 등 갑신정변의 구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들이 나라를 구하는 방법에 대해 다양한 양상을 노정했다는 면을 우리는 다시 인식해야한다.

근대 한국이 일본에게 치욕적인 병합을 당한 우리측의 원인을 필자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본다

1) 중국이상으로 경직한 유교식 인치체제

2) 전근대적 등급관계, 종속관계 사회

3) 중국 유교식 가치관과 맹목적인 문명우월주의

4) 실행력이 양한 공론, 공담적 국민체질

5) 세계인식에 대한 유연한 사고와 대응의 결여

6) 가족, 혈통에 짓눌린 혁명의식의 결여 및 박약함

7) 국가보다 자신의 집단 보존을 우선시킨 이기성

8) 민족의식, 자립의식의 박약

9) 근대 국민국가의 미완성

10) 중앙집권제의 부패성

한국병합의 교훈에서 우리 자신이 성찰해야할 결함을 분석해보면 결국 우리 자신이 독립의 길을 일본인에게 내준 셈이 되기도 했다. 지금부터 100년 후를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는 경건하고 겸허한 심정으로 그 이유와 함께 우리 안에 내재된 치명적 결함을 찾아내어 재인식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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