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덤 논단] 우리의 역사두뇌는 이렇게 세뇌되었다
[프리덤 논단] 우리의 역사두뇌는 이렇게 세뇌되었다
  • 프리덤뉴스
  • 승인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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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국사학계의 당면 과제는 구겨진 국민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조선은 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망하자, 성리학의 중심이 중국에서 조선반도로 옮겨왔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전국의 유림들이 을사보호조약(1905)과 합병(1910) 에 품었을 반감의 성격과 크기가 어떠했을 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유림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멸망보다 변방 오랑캐라고 여겨왔던 일본에 의한 성리학적 모반謀反에 억장이 무너진 것이다.

해방 후 국사하계는 착한 조선이 강도같은 일본에 억울하게 당했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우리의 역사두뇌는 이렇게 세뇌되었다

 

글/정광제(이승만학당 이사)

 

그간의 동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특징은 일개 이념이 이 지역을 천여년 지배해온 것이었다.

공자 맹자로부터 시작하는 원시유교와 남송의 주희에 의해 집대성된 신유학 즉 성리학이 바로 그것이다.

주자학이라고도 불리우는 성리학은 철저히 중화를 최상위 정점으로 하는 원뿔형 프레임을 갖고 있다.

중화 아래 조선이 있고 그 아래 일본, 또 그 아래 변방 제국들을 놓는 수직적 나선형 사유체계를 그 특징으로 한다.

그렇기에 조선은 한족이 중원에 세운 나라는 必히 조선의 상국이고, 조선 아래 나라들은 중화에서 두 단계 멀리 떨어진 후진 나라라는 세계사의 틀을 뇌리에 붙잡고 있었다.

중국의 변방 토호국으로서의 조선의 존재의의는 중국 아래 2등 국가이지만, 조선의 역사는 오히려 중국에 대한 감사함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족이 세운 명나라는 성리학적 정통성을 갖는, 조선의 상국上國이지만, 비록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할지라도 한족이 세운 나라가 아니면 상국으로 여기지 않았다.

만주족을 시원으로 하여 중국대륙을 지배한 청나라는 조선이 멸시한 오랑케로서 그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 성리학적 관점에서 청나라는 상국일 수가 없었다.

오랑케의 나라였다.

청나라의 조선침략인 병자호란의 참화는 이런 사상적 배경을 갖고 있다.

 

그 당시 조선은 한족이 세운 명나라가 망하자, 성리학의 중심이 중국에서 조선반도로 옮겨왔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이를 소중화사상이라고 부른다.

소중화사상에 의하면 비록 중국 대륙을 지배하는 나라라 할지라도 청나라는 변방 오랑케 국가가 되는 셈이다.

이제 조선이 명나라를 이어받은, 온 세상과 성리학의 중심국가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일본 따위는 말할 필요도 없는 조선의 아래 나라인 셈이다

그런데 조선은 그런 일본에게 나라를 바치는 종말을 맞았다.

그 당시 전국의 유림들이 을사보호조약(1905)과 합병(1910) 에 품었을 반감의 성격과 크기가 어떠했을 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유림은 조선이라는 나라의 멸망보다 변방 오랑캐라고 여겨왔던 일본에 의한 성리학적 모반謀反에 억장이 무너진 것이다.

 

해방 후 국사학계는 이런 구겨진 자존심 회복운동에 나섰다.

제일 먼저 손을 본 역사가 조선의 멸망사이다.

그들은 착한 조선이 강도같은 일본에 억울하게 당했다는 프레임을 만들었다.

당시 사회 분위기를 타고 이 프레임은 대단한 성공작이 되었다.

또한 망국 암주 고종을 개혁군주로 추앙시키고, 폐족왕녀 민자영(민비)을 국모로 승급시켜버렸다.

이는 진실의 페이지를 찢어버리는 폐악의 서곡이었다.

 

이를 계기로 세종과 정조 등 수많은 왕들과 안중근 김구 등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인물들에 대한 과장과 허풍이 역사로 국민들에게 교육되었고, 애국애족의 필수 이데올로기로서 역사는 정권의 치마폭 속에서 춤추게 되었다.

또한 그러면 그럴수록 일본에 대한 적개심은 날로 두께를 더해갔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인의 두뇌의 진면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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