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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明時待의 마중물] 노숙자 그녀
[光明時待의 마중물] 노숙자 그녀
  • 프리덤뉴스
  • 승인 2021.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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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그녀

 

전주발 대전행 고속버스 출입문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태워달라는 여자와 안된다는 기사님. 여자의 행색은 더럽고 지저분하고 남루하였고 중간쯤의 좌석에 앉은 내게 역하고 불편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돌아보니 승객들이 무슨 일인가 하여 좌석 통로로 모두 고개를 삐딱하니 빼고서 다양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녀는 돈이 없으니 통로에 앉아서 가게 해달라고 생떼를 썼다. 지능이 좀 모자란 듯 보였다.

기사는 결국 버스회사 직원을 동원해 그녀를 끌어내리고 출발을 했다.

사람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잠에 빠져들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창밖을 응시하기도 했다.

대전행 버스였다.

전주역 대합실. 책을 들여다보며 대전행 기차를 기다리는 중 갑자기 속이 뒤집힐 것 같은 냄새를 풍기며 내 앞에 선 다리가 보였다.

고개를 들어보니 웬 여자가 손을 내밀며 "돈 줘. 나 대전 가야 돼." 하는 것 아닌가. 뭐 이런 이상한 사람이 있나 싶어 무시하고 다시 책에 눈길을 줬는데 그녀가 발로 내 발을 탁 차는 것이었다.

"돈 줘어. 나 대전 가야 한다니까. 빨리 돈 줘어." 아니, 내게 무슨 돈을 맡겨놓기라도 했나? 순간 짜증이 나서 홱 째려보면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녀는 내 행동에 잠시 놀란 듯하다가 이내 다른 사람에게 가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대합실의 사람들이 수차례 자리 이동을 하고 난 후에야 그녀는 대합실을 빠져나갔다.

대전행 기차 대기 중이었다.

대전에 또 갈 일이 생겨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하는데 택시 승강장 근처에서 웬 여자가 갑자기 달려오더니 "돈 줘!" 하며 내게 손을 내밀었다.

대전에서의 스케줄을 머릿속으로 점검하며 걷다가 갑자기 당한 일이라 깜짝 놀라며 내가 작게 내지른 소리 "어마!"가 가시기도 전에 나는 그녀가 누군지를 알아봤다.

똑같은 옷, 더 역겨워진 냄새, 부스스한 머리, 꾀죄죄한 얼굴, 투박한 손이 그녀가 전에도 나를 불렀던 사람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

도대체 이 여자는 왜 나만 보면 돈 달라고 손을 내미는 거야?’ 황당해서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별 미친 여자 다 봤네...... .”라고 입속말로 중얼거리며 내쳐 승차권을 사러 갔다.

그녀는 엄마 따라오는 꼬마처럼 졸래졸래 따라오며 돈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다가 제풀에 지쳐 떨어지더니 이번엔 다른 사람을 붙들고 늘어졌다.

그녀를 뒤돌아보며 터미널 대기실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나는 곧 책을 읽느라 그녀를 잊었다. 그리고...... .

승차 후 1분여의 시간이 남았을 무렵 버스 출입문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녀가 또 버스를 타겠다고 기사와 또 다른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도대체 그녀가 왜 대전엘 가겠다고 그 야단인지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전에처럼 통로에 모두 고개를 내놓고 멀뚱멀뚱 바라보면서 이 희한한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아예 좌석에서 일어서서 보기까지 했다.

어떤 이는 너털웃음을 웃고, 또 어떤 아주머니는 혀를 차고, 젊은 총각 하나는 기사에게 그냥 문 닫고 출발하자고 소리를 쳤다.

옥신각신 차에 오르려는 그녀를 겨우 끌어내리고 차가 드디어 출발했다. 뒤에서 누군가 물었다.

"기사 양반, 도대체 무슨 일요?" ", . 승객 여러분께 미안하게 됐고만요. 저 아줌니가 대전 가는 버스만 보믄 그냥 돌아버려서요." 이번엔 궁금증을 견디지 못한 내가 물었다.

"왜요? 그럼 저 여자가 여기 자주 와요?"

"아이고, 자주 오다 뿐이간요? 거짐 살다시피 혀요. 아주 귀찮어 죽겄당게요." "

왜 그런대요? 정신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길에서 돈 달라고 막 떼쓰던데요."

그러자 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내게 넌지시 물었다.

" 아이 그려서 돈 줬어요? 저 여자 미친 여잔디. 아무나 잡고 돈 내노라고 혀요오?" 너 당했구나 하는 익살스런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봤다.

그 바람에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호기심은 나만 커진 게 아니었던지 뒷좌석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아줌니는 뭘 좀 아시는갑네요. 왜 근대요?" 웅성대던 사람들이 쥐죽은 듯 조용해지면서 내 짝 아주머니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녀는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의기양양해진 표정으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긍게 그것이 말여요. 저 여자가 원래는 대전 살었디야.

근디 집에 강도가 들어갖고 걍 저 여자를 거시기해뻐렸다느만요. 그리갖고 즈그 시엄씨헌티 소박맞고 쫓겨났단디 친정이 없디야.

뭐 동상 하나가 있단디 챙피시럽다고 발걸음도 말라고 혔다든가 뭐인가, 암튼지간에 저 여자가 충격을 콱 먹어갖고 저 모냥이 됐다는 것이여-.

" 사람들은 이제 아주머니의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올 것인지 흥미진진한 소설을 듣는 심정으로 그녀를 다그쳤다.

"그래서요?" 승객들의 반응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세상에!" "음마, 저 여자가 뭔 잘못이라고!"

"쯧쯧, 매정헌 시어미네." " 시집 입장으서는 그럴 수도 있겄고만요."

그리고 맨 뒤쯤 앉았을 법한 먼 젊은 여자 목소리가 " 강도가 왔을 때 남편은 뭐하고 있었대요?" 하고 톡 쏘듯 묻자 옆자리 아주머니는 열변을 토했다.

" , 그 썩을 화상이 글씨 이불 뒤집어쓰고 벌벌 떨고 있었다드만? 그러고는 여편네를 무슨 벌레 보듯허다가 죄인처럼 내쫓은 거라고 허드랑게에? 아이 시상에 그때 그 강도놈이 그 짓거리를 허는디 아그들도 거그 있었다드만. 긍게 저 여자가 미치지 않고 배기겄어요?

나라도 미쳤을 꺼여, 미치고 말고지. 좌우당간 그리갖고 여그 갔다 저그 갔다 지가 으디 가는 줄도 몰르고 싸돌아댕기다가 전주까지 왔다고 허드만.

근디 미친 노숙자년이라고 꼬치 달린 잡것들이 가만 뒀겄스요?

치마만 둘르믄 다 좋다는 것이 사내들인디...... ." 아주머니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몸을 좀 들썩이더니 통로에 윗몸을 반이나 내놓고 세모눈을 뜨고서 차내에 있는 승객들을 뒤에서부터 앞까지 쭉- 훑어보았다.

남자 승객들이 공연히 창밖을 보는 척 딴 시늉을 하는 상상이 되었다.

갑자기 차내의 공기가 썰렁해졌다. 남자들은 자신은 무관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아까 소리 질렀던 젊은 총각은 남자라고 다 그러냐면서 궁시렁궁시렁했다.

소리 죽여 키득키득 웃어대는 여자도 있었고, 아마 맨 앞 좌석에 앉은 아가씨 둘은 얼굴이 빨개졌을 터였다.

내가 조용히 아주머니께 물어봤다. "그런데 그 여자가 대전에 가려고 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잊고 있었다는 듯 손뼉을 딱 치더니, "? 맞다. 우리가 그 얘기를 허든 참이었지. 저 여자가 대전에 갈라고 허는 이유는 딱 한 가지라고 허드만-.

애들이 보고 싶어서 근디야? 지 정신이 아닌디도 애들은 생각나는 갑습디다.

흐유! 긍게 에미는 에미랑게...... ." 갑자기 가슴이 찌르르 아파왔다.

저런 몰골로 사람들에게 돈을 요구했으니 아마 거의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대전에 가고 싶어서 날마다 저렇게 행동했어도 가지를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어하는 자식들을 한 시간 거리에 두고도 만나지를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가슴이 아플 것인가, 온전한 정신도 아닌 처지에. 얼마나 애가 탈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는 그만 그녀에게 몰인정하게 대했던 자신의 행동에 수치심을 느꼈다.

단순히 그녀의 외모와 행동으로 그녀를 판단해버렸던 내 과오는 비수가 되어 마음을 찔렀다.

그녀가 대전에서 전주까지 어떤 경로로 왔는지는 몰라도 전주에서 다시 대전을 가지 못해 그런 행동을 해왔다는 것을 알고 나니 정말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김명서 作
김명서 作

 

아주머니가 중얼거렸다. "헤에, 긍게 것도 다 지 팔자요. 복이 지지리도 없응게 저 꼴이 됐지. 글도 밥은 어서 먹는지 굶어 죽든 않고 다니는 것 같어서 쪼깨 들 안씨럽드만, -." " 잠은 어서 잔답뎌?" 뒷좌석의 남자가 물었다.

", 여그 저그 떠돌믄서 잘 거 아니겄스요? 왜요? 어서 자는가는 왜 물어본디야?" 아주머니가 눈꼬리를 새초롬하게 만들고 뒤를 돌아보면서 의심스럽다는 듯 말했다.

", 그냥 궁금헝게 물어본 건디 뭐, 내가 알믄 뭐한다고요, ? 그런 거 아닝게 괜히 그러지 마시쇼이?" 뒷 좌석의 남자가 궁시렁거렸다.

대전까지 가는 내내 아주머니는 자신이 그 여자에 관한 소문을 입수한 경위며, 그 여자가 터미널 말고 전주역과 시외버스 터미널에도 자주 나타난다는 소문이며, 대전의 남편은 새장가를 갔다는 소문이며, 그 강도는 아직도 붙잡지 못했다는 얘기들을 미주알고주알 다 쏟아내셨다. 수다쟁이셨다.

대전에 도착해 내릴 때 아주머니는 이미 중년인 내게 아짐씨도 남자 조심하라고 한 마디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그 날 대전행 버스 속에서는 벌레 씹어먹은 듯한 씁쓸하고 지저분한 느낌이 꽉 차 있었다. 기사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일부러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댔다.

대전엘 그리 자주 가는 것은 아니지만 몇 달에 한 번씩은 다녀오곤 하는데 그 이후 그 여자를 만날 수가 없었다. 대전행 고속버스에 오르면 나는 출입문을 유심히 지켜본다. 혹여 그녀가 나타나 타겠다고 조르면 내 표를 주어서라도 대전에 가게 해주고 싶다.

인륜은 이 사회에서 용납이 안 돼 그렇게 끊어졌다 해도 어미와 자식의 천륜을 끊어버린 그녀의 시댁에 가끔 나 혼자 분노한다.

또 그처럼 모진 일을 당하고 충격으로 정신이상이 된 누이를 나 몰라라 박대해 떠돌게 만든 동생의 혈연에 대해서도 가끔 분노한다.

그리고 가장 속상한 건 그런 처지의 가련한 여인이 주워 입은 더럽고 지저분한 옷으로 몸을 감싸고 추위에 떨며 거리를 떠돌게 하는 이 나라의 엉터리 같은 사회보장제도이다.

치료만 잘 하면 본정신을 되찾을 수도 있을 사람을 그렇게 방치하여 유기한 국가의 태도이다.

 

***

2005.03.02. 오전3:50의 일기이다.

2021년 현재 세상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남녀평등을 외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 여성상위시대를 선포하고, 그러다 양성평등을 넘어서서, 지금은 세상에는 남녀가 아닌 성도 있다면서 젠더를 천명하고, 혼란스러운 성정체성을 내세워 모든 일의 잣대를 으로 기준 삼는다. 남편 송경진 선생님은 그 어지러움 속에서 희생당했고 나는 불온한 사회에 맞서 싸우는 처지가 됐다.

오늘 문득 16년 전의 일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그때 그녀의 난도질당한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 아닌가!

그때 사회는 왜 그녀를 외면하고 거리를 떠돌게 했을까?

지금 사회는 왜 나를 외면하고 법정투쟁을 하고 집회며 시위를 찾아다니게 만들까?

우리는 그저 평범한 소시민이고 상대적으로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인데 왜 그녀도 나도 이렇게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살아내야만 하는 것일까?

내게는 수많은 물음표가 찍혔고, 하나 더하여 그때 그녀는 대전으로 갔을지, 지금은 그녀가 어디서 무얼 하며 사는지, 아니 살아는 있는지에 대한 물음표까지 찍혔다.

, 사는 것이란 정말 풀기 어려운 문제다.

이 글을 읽은 당신은 혹시 그 답을 아시는가?

 

2021.04.01. 光明時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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