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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제5공화국의 역사적 의미[1]
전두환과 제5공화국의 역사적 의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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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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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제5공화국의 역사적 의미 [1]

 

최 진 덕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철학)

최진덕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사진 윤상구 작가)

 

 

1. “전두환 혐오증이라는 질병: 전두환은 악마인가?

 

작년(2021) 11월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거하는 날, 저는 경상남도 진주의 어느 병원 6인 병실에서 여동생을 간병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정오 무렵 병실의 TV전두환 씨 향년90세 사망, 국립묘지 대상 아냐라는 자막과 함께 그의 서거 소식을 알렸습니다. 뉴스를 들은 병실의 나이 드신 아주머니 한 분이 TV 화면에 비치는 그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언성을 높였습니다. “저런 놈은 당장 때려죽여야 해.” 그러자 같은 병실의 다른 아주머니 두 분이 맞장구를 쳤습니다. “맞아, 때려죽여야지.”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 또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전두환(이하 호칭 생략)은 경남 합천 출신이므로 병실 아주머니들과 동향입니다. 죽고 나서까지도 동향의 아주머니들로부터 입에 담기조차 힘든 막말을 들어야 했다는 사실은 전두환 혐오증이 지역의 차이를 넘어 우리 국민의 정신 속에 널리 퍼져 있음을 알려줍니다. 병실 아주머니들은 전두환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도 없었을 것이고 그의 <<회고록>>을 읽었을 리도 만무합니다. 평생 남편 뒷바라지와 자식 키우기에 바빴을 이 분들에게는 전두환이 누구인지 생각을 해볼 만큼 한가한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분들의 전두환 혐오증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요. 당연히 다른 누군가에 의해 심어졌습니다.

 

한겨레신문은 학살자 전두환, 반성 없이 죽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내란을 일으켜 시민을 학살한 뒤 고문과 압제로 인권을 유린했던 독재자 전두환이 23일 사망했다. 국민은 지난 40여년 수없이 사죄의 기회를 줬지만 거짓과 핑계로 일관했던 그는 죽는 날까지 한마디 사과도, 참회도 없었다.” 한겨레신문의 주장이 정말로 옳다면 경남 아주머니들의 막말은 전혀 막말이 아니고 참말일 것입니다. 정말로 전두환이 한국 현대사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학살자인데도 사과 한마디 없이 거짓과 핑계로 일관했다면 살아생전에 국민이 나서서 당장 어떻게 했어야 마땅했습니다.

 

보수신문으로 알려진 조선일보의 보도태도 또한 한겨레신문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일보는 서거 당일 전두환, 연희동 자택서 사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23일 별세했다고 쓰고는 혈액암으로 수척해진 90 고령의 전두환이 광주법정으로 끌려가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11.24)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전 전 대통령이 철권통치했던 8(1980-88)은 정치적 억압과 권위주의 통치, 인권탄압이 이어진 시기였다. 그는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기반을 잡은 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하며 집권했다. ‘80년의 봄으로 상징됐던 민주화 바람은 그의 등장으로 싹이 꺾였다.”

 

조선일보는 학살자라는 말을 쓰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두환의 치적 몇 가지를 마치 사족처럼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 호황기를 맞이했다는 것, 그리고 예상을 깨고 권력을 순순히 내놓음으로써 국가적 파국을 피하고 평화적 정권이양을 했다는 것 등이 그것들입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좌우 진영과 지역, 계층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이 대립과 갈등이 격화된 출발점이 바로 전 전 대통령 집권 과정이었다. 이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전 전 대통령이 5.18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떠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조선일보는 1980년 이후 한국현대사의 모든 대립과 갈등의 원인을 전두환 한 사람한테 다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겨레신문의 논조와 별반 다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실 아주머니들의 막말을 정당화해주기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입니다. “전두환 혐오증은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지식인들 사이에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사설 마지막에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을 인용하고는 어두웠던 역사의 기억도 그(전두환)와 함께 떠나보냈으면 한다고 점잖게 말합니다. 전두환을 한국현대사 최고의 악마로 낙인찍어놓고는 미워하지 말자, 과거지사로 돌리자고 하니, 이것은 병주고 약주는 것도 아니고 병만 주고는 그냥 모른 채하자는 것입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늘 찬반양론이 분분하기 마련인데 유독 전두환에 대해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오랫동안 맹목적 증오에 가까운 부정적 평가 일변도였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지경입니다. 전두환을 악마로 보는 근거가 도대체 무언지를 물어야 했지만 좌파는 물론이고 우파까지도 근거 묻기를 게을리 해온 듯합니다. 당사자의 말은 다 무시하고는 아무 근거 없이 무조건 학살자로, 무조건 악마로 낙인찍어놓고는 사과를 요구하고 심지어 조리돌림까지 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인권유린이고 정치폭력입니다.

 

전두환은 정말로 학살자이고 악마였을까요. 스탈린과 모택동은 수천만 명을 학살했습니다. 이 두 악마의 적색폭력은 히틀러의 백색폭력보다도 수십 배 더 악질입니다. 이 두 악마의 새끼에 해당하는 인간이 김일성이고 김정일입니다. 이 두 인간은 6.25남침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켰고 대명천지에 동포 수백만을 굶겨 죽였습니다. 스탈린과 모택동, 김일성과 김정일, 이 잔인한 공산주의 악마들의 천인공노할 만행과 비교해본다면 전두환에 대한 평가는 달라져야 합니다. 전두환은 공산국가 북한과의 체계경쟁에서 압도적인 국력 차이로 자유민주국가 대한민국의 최종 승리를 이끌어낸 대통령이었습니다.

 

전두환은 10.26 이후 국가위기를 극복하고 국민의 삶을 풍요롭고 안정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포함 80년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은 전두환 시대가 살기 좋았다고 기억합니다. 물가는 안정되었고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으로 일자리가 풍부했습니다. 사회는 개방적이면서 질서가 잡혀 있었고 안보는 튼튼했습니다. 또한 대학가 운동권 좌경세력과 일부 야권 정치인들 외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어떤 부자유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도 그다지 심하지 않았습니다. 80년대를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직접 느낀 역사적 진실은 전두환을 악마로 보는 전두환 혐오증과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하지만 전두환 시대가 살기 좋았다고 말하는 우파 성향의 사람들까지도 그에게 감사를 표하거나 호감을 가지기는커녕 욕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유민주적 절차를 위반한 듯한 집권과정과 광주사태의 책임에 대한 의혹 때문입니다. 전두환은 법정에서 모든 의혹에 대해 자세하게 해명을 했고 2017년에는 3책의 방대한 <<회고록>>을 출판하여 자신의 해명을 체계화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12.12는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반란이 아니라 합법적 수사를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고, 5.17 계엄확대는 국권탈취를 위한 쿠데타가 아니라 전국 규모의 봉기를 막고 체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습니다. 광주에는 계엄군 투입이 불가피했지만 전두환은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혔습니다.(<<회고록>>1, 4)

 

그런데도 전두환 혐오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전두환의 해명에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전두환의 해명이 모두 자기변명에 불과한 것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전두환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철저한 군인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전두환의 <<회고록>>에 바탕을 두고 군인 전두환의 진면모부터 규명해보고자 합니다. 그가 군인이라는 점은 그 자신과 그의 모든 정치적 행위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데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한국현대사의 주역은 군인과 기업인이었습니다. 군인과 기업인을 알아야 한국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현대사에서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약30년에 걸친 시대는 학생 대 군인의 대결구도라는 틀 속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대에는 민족주의와 민중주의를 지향하는 학생 지식인들의 좌파적 성향이 적지 않는 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군인 대통령의 우파적 성향과 날카롭게 대결했습니다. 학생들의 좌파적 성향은 유감스럽게도 결국은 반()대한민국, 심지어 친()북한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파 중산층 국민이 아직 형성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좌파 아이디얼리즘을 막아내고 대한민국을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향하게 만든 주역은 두 군인 대통령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관점으로 한국현대사에서 군인 전두환의 정치적 행위와 5공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10.26, 12.12, 5.17, 5.18과 관련된 법적인 논쟁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도 정치학자도 법률가도 아닌 저로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운명은 법의 차원을 월등히 초월하는 최고의 중대사이기 때문입니다. 철학도인 저의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저는 한국현대사 전문가가 아닙니다. 아직 아마추어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한국현대사는 우리 모두의 자서전입니다. 누구나 염려할 자격이 있고 누구나 한 마디쯤 할 자격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몇 마디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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